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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군 고금도의 활성화 방안

[특별 기고] 김용철 / 전라남도 이순신연구소 홍보실장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06.24 23:59
  • 수정 2018.06.25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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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 / 전라남도 이순신연구소 홍보실장

정유재란 중 이순신 장군은 1598년 2월 17일 목포 고하도에서 고금면 덕동리으로 이진하여 대형수군기지를 건설하였다. 선조실록에 따르면 전선 53척과 수군이 7,328명이었다.

이순신은 고금면 덕동리에 통제영을 건설한 이유는 첫째 일본군이 순천까지 왜성을 축성하고 마지막항전을 불사하는 것과 이미 패전의 기색이 짙어 일본으로 철군하려는 것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둘째로 일본군과 싸우고 있는 수군들에게 안정적으로 군량을 공급할 둔전이 필요하였다. 셋째로 중국 명나라 수군이 주둔할 대형 항구가 필요하였다.

따라서 이순신 장군은 지리적 조건이 상기에 부합되는 곳을 고금도로 정하고 이곳에 중국군이 주둔 할 수 있도록 해남도과 고금도에 석교를 놓고 고금도에 조・명연합군통제영 진지를 건설하였다.

그동안 중국에서 원정을 온 수군들은 진지가 구축되지 않아 전선이 정박하지 못하다가 1598년 7월 16일 명나라 수군은 고금도에 다리가 만들어지면서 주둔하게 되었다. 이후에 중국 명나라 수군은 전선 500척에 중국수군이 19,800명에 이르렀다.

조・명연합수군통제영은 해남도와 고금도에 이르는 5만여 평에 이르는 광대한 기지였다. 고금도에 도착한 명나라 도독 진린은 7월 18일 이순신과 함께 연합군을 이끌고 금당도에서 있었던 일본군 섬멸작전을 관전하였다.

그 후 중국 명나라 진린 도독은 전쟁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용검산 밑에 무인의 상징인 관우를 표본으로 전쟁의 승리와 장병들의 보위를 기원하기 위해 관왕묘를 건립 하였다. 이것이 현재 충무사의 전신이 되었다.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 전투 중 조선군 지휘관 이순신과 조선수군, 명나라 등자룡 지휘관과 중국수군이 전사하여 고금도 조・명연합수군통제영으로 운구 되어 초분이 만들어졌다. 현재 그 자리는 충무사가 들어가는 입구의 왼쪽 언덕 위 소나무밭이며 이름은 월송대(月松臺)이다.(관양묘 비문에는 月昇臺로 되어 있음).

그리고 1600년 고금도 조・명연합수군통제영은 여수 경도로 이진되면서 보(保)로 바뀌게 된다. 그 후 조・명연합수군통제영의 규모가 급속히 축소되었다.

1791년 정조의 꿈에 관왕묘가 현몽하자 큰 나라에 은혜를 보답한다는 상징적 의미의 관왕묘가 정조에 의해 탄보묘로 사액되어 이름이 바뀐다. 또 조선 후기 보가 폐지되면서 덕동리 수군진도 훼철되고 일제강점기 때는 겨우 옥천사만 남게 된다.

1953년 관왕묘가 자리한 부분이 유림들에 의해 현재의 충무사라고 하는 이름으로 새롭게 바뀌면서 경내도 대대적인 정비를 하였다.

그리고 1960년 1월 29일 ‘고금충무사사적’이 제 114호 국가사적지로 지정되었다.

앞에서 설명 한 것처럼 고금도는 한・중 관계에서 보도라도 역사적. 문화적으로 귀중한 보물임에 틀림없다.

2014년 시진핑 주석이 한국을 방문하여 서울대학교 강연에서 한・중우호의 상징으로 고금도를 거론하였다. 중국의 지도자가 아주 작은 섬인 고금도를 지적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그러자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베이징대학교 강연에서도 조・중우호의 상징으로 또 다시 고금도에 와서 주둔한 조・명연합수군과 명나라 진린 도독을 거론하며 한・중 우호를 강조하였다. 이에 완도의 고금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정유재란시기 조선군과 중국군이 연합으로 일본군을 섬멸하기 위한 전진기지인 고금도는 조・명연합수군통제영으로 일본군을 섬멸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조선에서 가장 중요한 국제적 군사기지였다는 것이다.

둘째, 고금도에 설치되었던 조・명연합수군통제영은 오늘날에도 한・중 우호의 상징성으로 한・중 정상들에 의해 거론 될 만큼 중요한 자원이다. 따라서 한・중 우호기념관, 유적지 복원 등을 실시하고 국내외의 관광객을 유치하여 역사체험의 공간 뿐 만 아니라 국내외의 역사적 인물을 통한 충절사상과 리더십 등과 기존의 관광자원과 연계하여 고금도의 관광자원 활성화에 노력을 기우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자원을 바탕으로 관련된 유적과 유물의 활용방안을 구상하여보면 조명연합수군의 통제영이 운영되었던 덕동리 일원의 남겨진 대표 8개 유적이 있다. 이는 조・명수군연합군통제영, 월송대(이순신 가묘), 중국군 진린선소, 중국수군 참전비, 해남도 목교, 해남도 중국군 사우, 충무사, 중국수군 가묘 등이다.

이것들을 복원 또는 관광콘텐츠화하는 방안으로 가장 중요하게 거론 할 수 있는 것은 조・명수군연합군통제영의 활용방안이다. 조・명수군연합군통제영의 활용방안으로 필요한 것 중의 하나는 ‘한・중수군연합군기념관 건립’ 추진 방안을 제안할 수 있다. 이는 한・중우호수군전시관을 건립함으로써 이순신(조선수군), 진린(중국수군), 등자룡(중국장수) 등의 역사적 사실 조명과 발굴을 선결로 이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중수군연합군기념관 건립’으로 기대되는 효과는 한・중 우호 상징적 기념관으로 한・중 우호 관광기반 구축. 재방문에 이어지는 국제 명소화의 방문. 지역경제 기여와 자유학기제 방문. 방문 학생들의 충절과 역사탐방의 산교육장이 될 것이다. 또한 상기의 것들이 밑 걸음이 되어 한・중 우호 연극. 영화. 콘서트 등 체험학당 상설운영이 가능케 될 것이며, 한국민과 중국민의 역사인식의 차이도 훨씬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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