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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밥에 담긴 1980년 5월 광주

[5.18 특집] 완도 5.18 주먹밥 나눔행사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18.06.01 21:48
  • 수정 2018.06.0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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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먹고 다니냐?"
그 말이 시작이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자식 새끼들 키운 사람이 가만히 있음 되것소!"
그러자 조금씩이라도 쌀을 가져와 시위대에게 밥을 지어주자고 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그렇게 쌀 몇 됫박씩을 가져와 밥을 지었고, 주먹밥을 만들었다.
그러자 이곳 저곳에서 아주머니들은 도로변에다 블록을 쌓고 그 위에 커다란 양은솥을 걸쳐놓고선 장작불을 지펴 밥을 지어 주먹밥을 만들었다.

서슬퍼런 신군부는 누구라도 시위대에게 밥을 건네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복개상가 아주머니들은 그들의 말에 아랑곳 하지 않았다. 시위대가 밥을 못 먹고 있다고 돈을 걷어 김밥이랑 주먹밥, 담배와 음료수 등을 사 복개상가 맨 끝 도로에 내놓고 시위대 차량이 오면 차량을 세워 커다란 그릇에 주먹밥을 가득 담아서 올려주었다.

주먹밥이며 음료수와 과일을 받을 때마다 청년들은 그 고마움에 몸을 둘 바를 몰랐고, 광주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과 정의감으로 충만했다.

해남의 딸, 광주의 언니 고정희 시인도 "시위대들은 그 음식들이 차량 위에 실려질 때마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면서 뜨겁게 달아오르는 정의감에 불탔다"고 술회했다.

신군부에선 내심 민생 폭동이 일어나길 바랬다. '순식간에 금은방이 털리며 거리는 불량배들로 득실거리는 무자비한 광주'를 그렸다. 그래야만이 자신들의 행위가 정당화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광주는 그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항쟁기간,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지만 그 고통은 전혀 표시되지 않았다.
오히려 시민들은 피가 모자라서 부상자들을 수술할 수 없을 때 헌혈을 하러 병원으로 달려갔다.

항쟁기간동안엔 그 흔한 좀도둑은 물론 사재기도 하나 없이 되레 많은 성금이 모였다. 누구 하나 시키지 않았고 누구 하나 말하진 않았지만, 누구나 알고 있었고 누구나 행동으로 함께 나눴다.

마치 2018년 촛불 혁명과 같지 아니한가!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바람직한 형태로 자기 역할을 해냈던 주먹밥에 담긴 1980년 5월 광주.
궁극의 세상, 민본(民本)이었다.

완도에서도 지난 15일 완도읍 인공폭포 앞에서는 518 주먹밥 나누기 행사가 열렸다.|

그 무엇도 사랑이라 말 할 수 없다.
명예도 이름도,
당신들의 사랑과 명예와 이름 앞에선!
5월의 모든 것엔
당신들의 영혼으로 가득 차 있다.
당신들의 사랑과 눈물...
그리고 당신들의 정의가!
우리는 
그 사랑의 씨앗을
저 푸른 하늘에 뿌려
그 눈물을 붓고
끝없는 시간으로
정의의 꽃을 피우겠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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