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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구걸하는 편지, 걸명소(乞茗疏)

[무릉다원, 은선동의 차 문화 산책 - 17] 김덕찬 / 원불교 청해진다원 교무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06.01 10:23
  • 수정 2018.06.0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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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찬 / 원불교 청해진다원 교무

은선동의 하늘이 더없이 맑고 싱그럽게 가까이 다가와 앉는다. 아마도 땅기운을 일깨워 온갖 생명들을 태어나게 하고, 잘 자라게 하려고 그러나 보다. 문득 안개가 나지막하게 대지를 감싸는 따스하고 포근함이 정겹고 평온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같은 하늘은 아니지만 갑자기 다산 선생이 떠오른 것은 왜일까? 홀로 유배지인 다산초당에 갇혀 쪽 하늘을 쳐다보고 천일각에서 내려다보이는 강진 앞바다를 보면서 한편 유유자적하였겠지만, 고향을 향한 그리움과 사무치는 충심으로 깊은 시름 또한 없지 않았을 터이다.

더욱이 끼니는 형편에 따라 건널 수도 있으나 차만은 그럴 수 없다고 하여, 차에 대한 애틋함으로 초당의 꽃길따라 정석(丁石) 아래 솟는 샘물 길어 차를 달이셨을 모습이 마치 앞에서 뵙는 듯 눈에 선하다.

얼마나 차가 마시고 싶었으면 같은 만덕산 자락 작은 봉우리 너머 백련사의 아암 혜장에게 차 달라고 으름장 섞인 글로 위안 삼으셨을까 싶다! 당시 다산 선생의 심경을 그 유명한 차를 구걸하는 편지글, 걸명소(乞茗疏)를 통해 살펴본다.

“나그네 이즈음 차를 탐하고 겸하여 약으로 쓴다오. 글 속의 묘법은 다경 세편으로 통달하고 병을 다스리자니 한창 크는 누에처럼 노동의 칠완다를 마신다네. 정기가 가라앉고 수척해진다는 기무민의 말을 비록 잊지 않았으나 막힌 것을 뚫고 부스럼을 없애려는 이찬황의 차 버릇에 빠졌소.
밝은 아침 일어나거나 낮잠에서 갓 깨어났을 때, 뜬구름이 갠 하늘에 깔리고 밝은 달이 푸른 시내에 어른거리며, 작은 구슬 설산에 나는 듯 등불은 자순의 향기에 나부끼고, 새 샘물, 타오르는 불, 들에서, 달에게 천신할 때의 기분이라네.
꽃 그린 붉은 옥잔 노공의 번화로움 따르지 못하고 돌솥의 푸른 연기 한유의 청담 소박함에 부족하나 게눈 고기 눈 떠오르는 물 끓임은 옛사람처럼 즐겨 하노라.
깊이 갈무리했던 용단 봉병 등 귀한 것 이미 바닥나고, 땔나무조차 할 수 없는 아픈 몸으로 오직 차를 비는 정분을 펼 뿐이오.
적이 듣건대, 고해를 건너는 다리를 얻는 길은 한결같이 시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소. 명산의 정기를 받아 서초의 으뜸인 차를 목마르게 바라노니, 아낌없는 큰 은혜 베풀기 바라오.”

물불에 이미 능통하여 자유자재한 차의 경지를 드러내어 육우(당, 차의 성인으로 추앙)의 다경(茶經)에 통하였음을 엿볼 수 있고, 옥천자와 이찬황, 당송팔대가인 한유의 시문과 청빈한담에 노닐며, “각자득이망세(覺自得而忘世)”하는 경지에 꽃을 피우고, 나아가 “음주망국 음다흥국(飮酒亡國 飮茶興國)”이라 하여 차를 모르는 민족은 망한다고 갈파할 정도로 확고했다. 바로 이런 정신이 20여 년의 유배 생활을 견디며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힘이 되었다.

이 시대의 우리도 다산의 차정신을 본받아, 한 잔의 차를 통해 오늘이 우리의 삶속에 아름답고 행복한 순례길 위의 하루이기를 축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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