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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라만상(森羅萬象)은 모두 나의 스승으로[에세이-고향생각]배민서 / 완도 출신. 미국 거주
완도신문 | 승인 2018.04.29 23:17


냉장고에 남아있는 김밥재료들을 처리할 요량으로 고슬고슬 밥을 지어 참기름냄새가 솔솔나는 마약김밥을 만들었다. "여보~ 얼릉 와서 마약김밥 한번 먹어 봐~" "아공~그라다가 잽히갈라~ 마약김밥이라 혀지말고 기냥 꼬마김밥이라 카지..." "ㅎㅎ"

오늘은 남편의 도시락까지도 꼬마김밥으로 통일시켜 출근시키고 나는 뒤란으로 총총 발걸음을 옮긴다. 지난 밤 사이에 텃밭에 아이들은 얼마나 더 자랐을까? 어리고 연약하지만 고개를 내민 새싹들이 내겐 그저 기특하고 자랑스럽기만 하다. 다산은 문장공부를 하러 찾아온 변지의라는 사람에게 이렇게 일러주었다고 한다.

 '사람이 글을 쓰는 것은 나무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가장 먼저 뿌리를 북돋우고 줄기를 바로잡는 일에 힘써야 한다. 그러고 나서 진액이 오르고 가지와 잎이 돋아나면 꽃을 피울 수 있게 된다. 나무를 애써 가꾸지 않고서 갑작스레 꽃을 얻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무언가을 이루려 함에는 진실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배우고 실천하며 연습을 거듭할 때라야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는 말이다. 어린시절에 나는 최고의 어리버리였었다. 우리엄마와 언니들은 너무 답답해 내게는 일을 못 시킬 정도로... , 그래서 집안 일은 제대로 배워보지도 못하고 서투른 결혼살림을 시작했었다.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을 몇 바퀴를 돌아도 무엇을 사서 음식을 만들어야할지 막막하던 시절이 있었다. 미국에 와서도 영어가 쏠라~쏠라로 들려 전화라도 걸려오면 심장이 벌렁거리던 시절도 있었고 까막눈으로 NCLEX시험 준비를 하면서 눈 앞이 깜깜할 때도 있었다. 지나 온 세월 속에서 홀로 뿌리를 내리려고 안간 힘을 써가며 끙끙대다가 나는 꿈결에서도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간절했던 몸부림들을 내 영혼은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순한 얼굴로 대지를 뚫고 나온 새싹을 보면 가슴이 두근대고, 멀건 물만 먹고도 할아방 수염처럼 치렁거리는 뿌리를 보면 나도 덩달아 눈이 번쩍 뜨인다. 나는 나무와 식물들이 햇빛과 물과 영양분을 흡수하려는 그 간절한 몸부림을 닮고 싶어한다.

"배우는 것은 바로 그들처럼!" 안도현 시인은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시작법 저서에서 "재능을 믿지 말고 자신의 열정을 믿어라" "스스로 창조하고 스스로를 발전시켜나가지 않으면 눈부신 천성은 망각 속으로 사라져버린다."고 말하며 '몰입'과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 역시 부단한 노력으로 살아서 펄떡거리는 시를 낚아 올리고 있지 않은가! 글을 쓸 때도, 그림을 그릴 때도 직장에서 일을 할 때에도 '몰입'은 아주 커다란 에너지를 발휘하고 있었다. 일년 전에 알지 못했던 것, 아니, 지난 번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오늘 홀로 작업하는 내 열정 속에 조용히 다가와 입을 맞춘다. 이렇듯 나의 잠들었던 감성과 감각들이 깨어나 꿈틀거리는 것이 요즘은 마냥 신비로울 뿐이다.

나에게는 꿈이 하나 있다. 지치고 병든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림으로 쓰는 수필집>을 발간하는 일이다. 나의 재능을 드러내기 보다는 진실한 삶의 성찰과 향기를 지닌 글과 그림이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나 자신의 성숙이 필요할 것이다. 글이나 그림을 제대로 배워본 적은 없지만, 나무와 꽃처럼 마음을 활짝 열고 주위를 둘러보면 내게 스승이 아니었던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상황도 없었다. 뿌리를 내리려는 나의 간절한 열망들은 어느덧 세상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들을 나의 스승으로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배민서/ 완도 출신. 미국 거주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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