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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햇살을 달면 어디서나

[완도의 자생 식물] 43. 제비꽃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8.04.09 15:08
  • 수정 2018.04.0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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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햇살만 달면 그립게 다가선 제비꽃. 네가 평등한 자연이라면 나는 하루살이 생명이다. 시작도 끝도 없는 길에서 너는 여기 있고 우리는 저기에서 이러쿵저러쿵 판단하지 말라. 이정표 없는 이 순간만큼 그저 강물 따라 낮은 데로 갈 뿐이다.

요 며칠 사이 봄기운이 돋아나는 온화한 날씨 때문인지 산새 소리가 다양해졌다. 딱새는 싸리나무와 명감나무 사이로 ‘딱딱’하며 외로이 쪼아 대는 빨간 열매는 겨울이 남긴 풍경들이 남아 있는데 어느새 박새가 와서 숲 속의 정적을 명랑한 목소리로 깨우고 있다. 그동안 굴참나무의 마른 잎사귀들이 서걱서걱 서성이고 있는데 이제 제법 간간이 굵어지는 산 꿩 소리가 이른 아침을 깨우고 있다. 가난한 들길에도 여기저기 들꽃이 있어서 잔잔한 눈물로 그리움이 젖게 한다.

제비꽃 지지배배 한 묶음으로 피어선 가냘픈 꽃대가 눈물 많은 소녀의 손등에 맺혀 있는 걸 보랏빛 눈망울을 보는 듯 쓸쓸하기만 하다. 제비꽃에 대해서 아련한 추억도 고스란히 마음속에 남아있다. 옛 친구와 학교 갔다 오는 길에 제비꽃이 느릿하게 봄 길을 만들어 주었다. 이 꽃으로 꽃반지와 꽃목걸이를 만들었는데 소녀들에게는 참으로 친근한 꽃이었으리라. 소녀들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나는 꽃 싸움을 했던 기억이 있다. 마땅한 놀이 기구가 없는 우리는 포근한 봄볕에 앉아서 제비꽃 싸움 놀이를 했다. 갈고리처럼 생긴 꽃꼭지를 서로 얽어 잡아당기면 약한 꽃이 끊어진다. 이 놀이를 꽃 싸움이라 했다.

그래서 제비꽃을 씨름 꽃, 장수 꽃이라고도 한다. 또 이 꽃이 필 무렵 오랑캐가 쳐들어와서 오랑캐꽃, 어린잎을 무쳐 먹어 외나물 꽃, 이른 봄 핀 가녀린 모습 때문에 병아리 꽃이라 하는 등 제비꽃은 여러 이름으로 부른다. 지금은 박새의 잘잘 거리는 노랫소리로 큰 개불알꽃과 쇠별꽃이 은하수처럼 한참 피어 댄다. 봄꽃 1막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자생종으로도 서울제비꽃, 태백제비꽃, 남산제비꽃, 광릉제비꽃, 화엄제비꽃, 금강제비꽃, 각시제비꽃 등 60 여종이 있다.

일반적으로 꽃 색은 흰색, 보라색, 노란색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완도에서는 흰 남산제비꽃과 자주색 털 제비꽃을 흔히 볼 수 있다. 마음에 햇살만 달면 어디에서나 평등하게 보이는 꽃이 제비꽃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야생초는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다. 삶의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제비꽃에선 그토록 잘 만들어진 헌법과 제도가 필요하겠는가. 법도 없이 살아가는 제비꽃은 그 나름대로 사회와 문화만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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