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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봄이 오면...

[에세이-고향생각]배민서 / 완도 출신. 미국 거주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04.07 17:22
  • 수정 2018.04.07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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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인가 나는 봄이 되고 싶었다. 추운겨울 말라 비틀어진 나무가지들, 그리고 꽁꽁 얼어붙었던 대지 속에서 신비롭게 움터 오르는 그 연한 생명력을 지켜보면 탄성과 함께 눈물이 나온다. 왜 일까? 춥고 막막했던 내 인생을 닮아서 일까? 아니면 생사를 오가는 암투쟁 끝에 건져낸 그 간절한 생명력이 느껴져서 일까?

그 때 부터였다. 집 안에 몇 안되는 화초에게도 무심했던 내가 화단을 만들고 텃밭을 일궈내기 시작했었다. 이번 달은 병원일과 CPR, Chemo/ONC 자격증을 갱신하느라 분주했지만, 틈만 나면 땅을 팠다. 서랍 속에 갇혀있는 그 아이들에게 생명을 주고싶은 작은 소망이었다. 그들이 내밀 연둣빛 싹을 상상하기만 해도 내 가슴은 한 없이 두근거린다. 누군가를 싹트게 해주는 일들이 이렇게 설레는지 예전에는 정말 몰랐다. 딱딱한 흙을 잘게 부수며 생각했다. 내 마음과 생각도 이처럼 말라 굳어버린 것은 아닐까?

아! 내가 진정 봄이 되고 싶다면, 먼저 나 자신을 부드럽게 부수고 좋은 영양분들로 기경하여야 하리라! 그래야만 예쁜 꽃도, 풍성한 열매도 기대할 수 있겠지!

어느덧 반 백을 살아버린 나이, 지난 세월을 나름 열심히 산다고 노력했지만 그래도 내겐 아쉽기만 하다. 붙잡을 수 없는 시간들...... 나는 세월을 아끼기로 했다.
그런데, 어떻게 세월을 아낄수 있을까?
무언가를 많이, 그리고 좋은 실적들을 만드는 것 만이 최선은 아니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감사를 배우고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후회하지 않았다.

소금인형 / 류시화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 버렸네

류시화 시인의 대표적인 시 <소금인형>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단순히 사랑시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소금인형이 되고 싶어한다. 내가 하고있는 일들 속에 녹아져 나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때에야, 비로소 가장 풍요롭게 그 순간들을 영위할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지난 주, 어린시절 해맑게 뛰놀던 추억들을 되살려 갈베스톤 해안에서 온 종일 뛰어 놀았다.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파도에게 '나 잡아 봐라~' 하며 파닥거리는 그녀는 영락없는 인어공주였다. 그래서였을까? 끝이 보이지않는 너의 넓은 가슴을 이리 저리 뛰어 다니며 내 심장이 팔딱팔딱 환희로움으로 반짝이는 건, 바로 또 다른 기적이었다.

나에게도 이처럼 봄이 찾아왔다. 따스한 햇살이 내 안에서 파도처럼 출렁거린다. 촉촉한 감성의 물 한 바가지 골고루 내 영혼에 뿌린 후 나는 내 속의 씨앗들을 발아시키려 한다. 청년시절에는 누려보지 못했던 잔잔한 평온함과 감동 속에서 나는 아주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것이다.

"아... 이렇게 나이가 들어도, 봄은 내 안에서 꿈틀거리며 다시 연둣빛으로 피어날 수 있는 거구나!"

배민서 / 완도 출신. 미국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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