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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인고의 눈물을 넘어

[완도의 자생 식물] 41. 매화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8.03.24 17:34
  • 수정 2018.03.2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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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에 꽃잎이 사그라질까. 삼월 눈이 오기 전에 봄비에 젖힌다. 하도 많이 젖어서 두 뺨에 하나의 눈물이 되었구나. 하나의 향기가 되기 위해 겨울밤에 얼마나 별 하나의 외로움을 견디어 냈을까.

사는 것은 슬픔을 이겨내는 일이기에 봄물로 실컷 울어나 본다. 지금 봄비가 우람한 매화 꽃망울과 처연한 매화꽃에서 빗방울로 그리움을 달아 놓고 있다. 매화꽃 향기 이끌려 어느덧 매화나무 사이에서 와있는 시간이 무심한 세월에도 꽃잎에 새겨진 두 마음이 그때나 지금은 다를 바가 없다. 예로부터 매화는 창연한 고전미가 있고 더없이 고결하여 가장 동양적인 인상을 주는 꽃으로 과거 수천 년 동안 한국, 중국, 일본에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리하여 매화꽃이 핀다는 소식이 바람결에 들리기만 하여도 옛 선인들은 거리를 멀다 않고 탐매(探梅)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예전에는 매화가 그리 흔하지 않은 나무다. 대갓집에 한그루 정도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집마다 한두 그루가 있다. 매년 매화꽃이 절정을 이룰 땐 꽃샘추위 때문에 매화열매가 적게 열리게 된다. 그러나 매화꽃의 진미는 눈과 더불어 피는 것이다.

사실 매화꽃 위에 눈은 아킬레스 같은 존재다. 이 속에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 고난을 넘기면 튼실한 열매가 되겠지. 그러나 매화는 더 좋은 조건에서 열매를 많이 맺기를 원한 것이다. 아무튼 삶은 자유로움 속에서도 극한 상황이 이미 왔고 아마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눈 속에 피는 매화를 설중매라고. 경칩 즈음엔 백매화부터 피기 시작하여 이어서 청매, 홍매가 핀다. 청 매화꽃은 꽃잎이 흰색이지만 꽃받침이 녹두색이므로 꽃잎에 약간 푸른색으로 배어난다.

깔끔한 하늘에 연록 물감을 살짝 뿌려 놓은 듯이 청매화 꽃이 '연 청록 하늘빛'을 만들어 놓는다. 스스로 인고의 눈물을 넘어서 매화 향기가 되었다. 가만히 있으면 시간이 길이 되고 인생이 되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그 속에 쓰러진 소주병도 있고 쓰라린 가슴으로 흠뻑 적혀 있을 수 있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점과 가을이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피는 식물들은 추위와 싸워야 한다. 이 중 매화와 물매화가 있다. 두 꽃은 모양은 비슷하지만 늦가을에 피는 물매화는 풀과다. 매화꽃과 마찬가지로 눈이 오면 그냥 맞을 수밖에 없다. 역경이란 원래 있던 자리에서 거스르는 데에 있다. 그럼 역경을 딛고 일어서려면 자기 몸을 일부라도 태워 주위의 온도를 높이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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