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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길을 걷는데 아름다운 친구로 함께

[완도의 자생 식물] 40. 자운영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8.03.24 12:49
  • 수정 2018.03.24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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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벚꽃이 필 즈음에 자운영 꽃도 피기 시작한다. 봄 들판은 토끼풀이 피고 자운영이 피어야 진짜 봄 들판답다. 봄의 새소리만큼 부드럽게 피는 자운영은 아무데서나 피지는 않는다. 봄이 오는 들판 한가운데에서 자운영꽃은 마음이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들판으로 가는 길에서 피어있다.

그 만큼 마음을 비우고 나지막하게 걷는 자에게 다가온다. 하염없이 산벚꽃 흩어지고 뻐꾸기 소리가 먼 산길을 헤치고 내려와 푸른 들판에 조용히 둥지를 튼다. 들판에 꽃들도 봄노래로 가득 차있다. 들판은 혼자 걸어도 둘이 손을 잡고 걸어도 아름답다. 아쉬운 것은 들판이 바둑판처럼 변했다.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상전벽해란 말이 이럴 때를 보고 말한 것 같다. 그 옛날에는 들판에서 생명이 낳고 자란 보습을 직접 만졌다. 자운영 꽃으로 꽃시계와 머리 리본을 만들었다.

들길을 힘차게 달릴 때도 도랑에 둘러앉아 개구리 알을 보았을 때도 늘 자연과 함께 했다. 그리운 마음들이 눈물겹게 피어 거기서 오래 머물지 못해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들판이 아름다워지는데 시절이 너무 빨리 지나버렸다.  무리 지어 핀 자운영이 흡사 보라색 구름 같아 보인다 하여 이름이 자운영이다. 예쁜 이름만큼이나 인간에게 모든 것을 주는 고마운 존재다. 질소비료가 없던 시절 농부들은 자운영을 일부러 길렀고 꽃이 필 즈음 쟁기로 엎어 풋거름으로 이용했다. 공기 하면 보통 사람들은 산소만을 생각하지만 공기 중의 산소는 20%에 불과하며 80%가 질소 기체이다.

산소 없이는 살 수 없지만 질소는 어떨까? 질소 또한 단백질의 구성 원소로 역시 생명체에 꼭 필요한 분자이다. 그러나 질소를 직접 흡수할 수가 없어 뿌리혹박테리아가 있는 콩과 식물의 도움으로 공기 중의 질소를 함유시켜 간접적으로 흡수하는 것이다.

자운영은 꿀벌들에게 밀원을 제공하고도 모자라 제 몸마저 풋거름이 되고자 땅에 맡기니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들길의 아름다움은 부드러운 선이다. 들길을 걷고 있으면 최상의 선율 위를 걷는 거나 다름없다. 삶의 내용은 가사이고 첼로의 선율은 마음의 울림이다. 이 둘이 합쳐져 노래가 된다면 이보다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들길은 끝을 보여주지 않는다. 한 치 앞을 모르고 걷는 인생과도 같다. 직선으로 가기보다는 좀 멀더라도 돌아가는 것이 여유의 멋이다. 새순이 여간 부드럽게 생긴 자운영 곁에 발걸음은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과정임을 새롭게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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