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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첫사랑 같은 꽃

[완도의 자생 식물] 37. 수선화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8.03.17 17:57
  • 수정 2018.03.17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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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밭 매는 엄마 곁에서 한 줄로 살아온 엄마의 설움을 보았네. 겨우 겨울을 넘기고 이제 제법 파릇한 얼굴들이 엄마 집 곁에서 그 설움의 꽃을 피우네. 수선화야 서럽다 하지 말라.

너보다 서러운 꽃잎 위에 서릿발 녹이는 눈물이 있어 햇살 가득한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을. 고단한 삶의 여정 속에서도 새벽은 또 다른 기다림이 있다. 갓 돋아나오는 온유한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 아주 태곳적일지라도 오늘 내 앞에서는 갓 태어난 어린아이 같은 햇살이여.

내 앞에 새싹을 보면서 진정한 자유를 본다. 자유와 평화 그리고 연약함이 온 땅을 밀어낸다. 수선화의 새순들을 보라. 엄마의 숨결을 닮았다. 온 땅이 숨쉬는 듯하다. 이것이 바로 자유와 평화인 것이다. 대지를 밀어내고 꽃이 피고 씨를 남기고 어디론가 홀연히 떠난다. 인생의 여정은 아직도 당도하지 못한 곳에서 첫배를 기다리는 설렘이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경전인지고 모른다. 그들만이 아는 방언이 속 춤까지 내어 흔들어 본다.

가냘픈 바람에서 온몸을 흔들어 대는 수선화는 겨울이 지나면 다른 식물보다도 잎이 먼저 돋는 식물이다. 여러 개로 포개진 잎들을 양쪽으로 가르며 한가운데에서 꽃대가 올라와서 여섯 자의 꽃잎으로 된 화사한 꽃을 피운다. 다른 꽃들처럼 수선화도 종류가 많다. 한 꽃대에 한 송이 꽃만 피는 수선화를 나팔수선화라고 부른다.

이에 비해 한 꽃대에 여러 송이 꽃이 피는 수선화를 제주 수선화라고 한다. 수선화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꽃 가운데 그보다 작은 꽃이 들어앉아 핀다. 이것을 부화관이라고도 한다. 한 송이 꽃에 큰 꽃과 작은 꽃으로 되어 있다는 말이다. 흰 꽃 위에 노랗게 작은 꽃이 얹혀 있는 것을 보고 옛 사람들은 금술 잔으로 귀한 존재가 된다는 뜻으로 여겼다. 곱디고운 봄바람을 어디에서 만들어 내는가. 바로 수선화 꽃잎이 만들어 낸다. 그만큼 수선화 꽃잎은 부드럽다. 태어나서 첫 만남을 잊을 수 없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누군가를 만나 인연의 결실을 맺는다. 세월이 흘러 그 만남이 현재 이어지지 않는다 해도 첫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봄을 좋아한다. 그래서 봄철의 꽃들을 하나하나 빠트리지 않는다. 그렇게 봄꽃들을 모조리 기다리고 있는데 수선화만큼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마치 첫사랑처럼 말이다. 엄마가 심어 놓은 마늘밭 옆에서 한 줄로 늘어선 수선화 꽃잎을 보면 첫 마음처럼 설렌다. 자유롭게 봄바람에 흔들어 대는 꽃잎을 보면 자유와 평화 그리고 온유함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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