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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에 찌든 고단함 말끔히 희석하는 감사의 기도

[완도의 자생 식물] 36. 엘러지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8.03.03 15:23
  • 수정 2018.03.03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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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에 황홀하게 목욕하다 들킨 얼레지는 몸도 가슴도 없이 오직 얼굴 하나로만 하늘만 담는다. 낙엽 위에 봄비 오는 소리에 살며시 얼굴을 감춘다. 수줍은 듯 가냘픈 봄바람에도 흔들리다가 봄비 오는 날에 아무 말없이 눈물짓는다. 높은 산봉우리에서 얼레지꽃이 봄이 오는 산야를 가슴 벅차게 바라본다. 낮은 산에서는 연분홍 진달래꽃이 이 산 저 산 한 무더기로 피어서 화들짝 놀라게 한다.

연분홍 물감을 온 산에 뿌려 놓아도 마음에서는 아직 여백이 있어 그리움으로 채운다. 높은 산꼭대기에는 깔끔하게 옷을 입고 봄 하늘을 닿을 듯 그립게 피어 있는 얼레지는 봄 산을 명랑하게 노래한다.

높은 산에 있으면서 가장 낮게 피어 사람들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얼레지는 해발 1천 미터 가까운 고산지대에 자생하는 꽃으로 개화는 2월~3월 사이에 핀다. 남쪽 바닷가에선 그리 흔하지 않지만 간혹 볼 수 있는 꽃이다.

높은 산중에서 군락을 형성하는 야생화 중의 하나가 얼레지다. 얼레지와 같은 시기에 피는 꽃은 노루귀와 복수초다. 이들 두 야생화는 작고 앙증맞은 데 비해 얼레지는 좀 크다. 복수초는 눈 속에서 핀다. 노루귀와 얼레지는 북쪽을 향한 산마루에서 자란다. 일부러 추운 곳을 찾아 꽃을 피운다. 꽃은 온실 속에서 피는 듯하지만 뿌리 내리는 땅은 온통 차갑다. 한편으로는 추운 곳에선 벌레와 나쁜 병균을 피할 있다.

시련과 고통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통해 공고하게 만들어 진지도 모를 일이다. 얼레지 꽃잎을 오므린 모양은 새의 부리 같기도 하고 햇빛을 보기 전에는 대부분 꽃잎을 오므리고 있다가도 한낮이 되면 날개를 활짝 펼친다.

햇살이 포근하다 싶으면 꽃잎을 뒤로 완전히 뒤집어 벌림으로써 마치 하늘로 날아갈 듯하다. 얼레지는 넓은 잎 두 장이 땅속줄기에서 올라오는데 이 두 장이 있어야만 꽃이 핀다. 또한 얼레지 씨앗이 땅에 떨어져 싹을 틔우려면 대략 7년 정도가 있어야 된다고 한다.

높은 산길에서 세속의 찌든 고단한 마음을 말끔히 희석할 꽃은 얼레지 꽃이다. 거친 숨소리를 젖히고 찾아온 이에게 한꺼번에 다가서는 얼레지 군락에서는 저절로 미소를 짓을 수밖에 없다.

밤에는 꽃잎을 닫은 모양은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을 감사의 기도다. 낮에는 둥글게 꽃잎을 열어서 어느 것 하나도 걸치지 않은 진실한 마음으로 가장 깨끗한 하늘만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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