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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말

[에세이-詩를 말하다]이경희 / 시인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02.14 18:30
  • 수정 2018.02.14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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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서 가장 강한 것은 혀
한 잎의 혀로
참, 좋은 말을 쓴다

미소를 한 육백 개나
가지고 싶다는 말
네가 웃는 것으로
세상 끝났으면 좋겠다는 말
오늘 죽을 사람처럼
사랑하라는 말

내 마음에서 가장 강한 것은 슬픔
한 줄기의 슬픔으로
참, 좋은 말의 힘이 된다

바닥이 없다면 하늘도
없다는 말
물방울 작지만 큰 그릇
채운다는 말
짧은 노래는 후렴이 없다는 말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말
한 송이의 말로
참, 좋은 말을 꽃피운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란 말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는 말
옛날은 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자꾸 온다는 말

                                           - 참 좋은 말/천양희

우리네 삶은 너무나 정직한 것이라서 아무런 조건이나 대가를 치르지 않고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스스로가 그 상황 속으로 들어가 경험해서 얻은 날 것의 생생함들이 삶을 지탱하는 '밑거름'이 되는 것 같아서.

천양희 시인의 '참 좋은 말' 은 우리 앞에서 앞다퉈 흘러가는 '슬픔의 강'을 홀로 건너간 뒤에 얻어낸 기쁨과 깨달음이다.

시인의 성숙한 성찰과 진지한 사유가 피워낸 인식의 꽃이다. 한 편의 시를 읽으며 저녁 내내 감동의 물결이 온마음을 출렁이게 만든다.

그리고 시인의 사색에 스며들어 나만의 지평을 넓히고 싶었다.

생을 대함에 있어서 어줍잖은 투정과 불평 불만은 이미 주어진 삶을 변화시켜서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과정이 결코 아닌 것 같다.

시를 읽으며 상상의 날개를 쫘악 펼쳐본다.

짧은 삶을 긴 하루의 일상으로 끌어와 조각조각 미분을 해본다면 아침과 정오와 어스름이 내리는 저녘나절과 캄캄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까만 밤이 되겠다.

유년의 뜨락을 거닐던 철부지의 천진난만을 아침이라 칭하고 열정적이고 순수한 사랑으로 불타오르던 젊음의 계절을 지날 때 우리들은 너나 없이 뜨거운 정오의  햇살 아래 있었다.

이윽고 저녁 노을이 서편 하늘가에 붉게 스며들 때 바로보는 사람의 마음도 고즈넉한 성숙의 시간으로 채워지고 삶은 보다 풍요로워졌다.

오후 다섯시를 넘어서자 서녘  하늘가에 아스라히 붉은 노을꽃이 피었다.

긴하루의 마감을 저녁놀의 생성과 소멸의 역학 관계로 풀어낼 수는 없는걸까?

하루가 천천히 지나가는 길목에 서 있을 때 내 마음은  아마도 만족스럽고  풍요롭지 않을까?

긴 하루의 시작을 알리던 설익은 아침과 뜨겁기만 했던 정오의 짧은 그림자 속에서는 볼 수 없었던 삶의 지평이 저녁 나절의 고즈넉한 쓸쓸함 속에서는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땅거미가 발 아래까지 추적추적 내려오는 저녁 나절에 비로소 깨닫게 되는 '참 좋은 말'들의 울림이 오래도록 마음 속에 아롱져간다.
 

이경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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