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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연인을 보내는 마음처럼

[겨울특집]겨울, 완도 그리고...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01.21 17:54
  • 수정 2018.01.21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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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을 달렸다. 드디어 논산육군훈련소.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점심 먹기도 이른 시간이라 근처 잠시 쉴 만한 곳을 찾으니 견훤릉 공원이 보였다. 한적한 시골에  있는 견훤릉 공원에 주차를 해 놓고 세 사람은 무언으로 걷기 시작했다. 딱히 훈계할 말도 위로할 말도 무색 해질것 같아서 그냥 느릿느릿 우리는 시간만 덜어냈다

그저 하늘도 땅도 사랑하는 연인을 보내는 마음처럼 쓸쓸했다.

조금 일찍 내려와서 근처에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마땅한 식당이 없어서 그냥 비빔밥집에 들어갔다. 맛이 원래 없었는지 그날 밥맛이 없었는지 반도 못 먹었는데  한 그릇을 다 비우는 아들이 내 마음을 다소 편하게 해 줬다. 작은 읍이라 식당 곳곳에서  머리를 방금 깎은듯한 아들을 데리고 식당을 찾는 부모들이 여럿 보였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그들의 마음도 우리랑 같을 것 같아서 괜히 인사도 해보고 말을 걸고 싶었다.

점심을 먹고 식당을 나와서 그제서야 이별의 시간이 점점 눈 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훈련소로 가는 길을 네비게이션에 입력하고 보니 얼마 안가서 사람들이 인산인해로 모여있는 곳이 보였다. 입구에서는 “왕의 남자”라는 영화에서 왕의 남자 역을 맡은 배우 이준기가 그날 입대했다.  팬들이 구름 떼같이 몰려 있었다. 그러나 내겐 조금도 신기하지 않았고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오직 아들을 혼자 남겨놓고 돌아가야 하는 씁쓸한 마음만이 가득했었다. 그것만이 중요했었다.
 


드디어 훈련소에 들어갔더니 차량들이 빽빽하게 들어 차 있고 사람들은  전국에서 모여 들었다. 한 집에 줄 잡아 서너명씩 따라 나온 것 같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누나 동생 삼촌 등등... 그렇게 많은 숫자가 모이리라 꿈에도 생각못했다. 사실은 남편이  바쁜 일이 있어서 혼자 버스 타고 데려주고 오라고 했었다.  며칠 전에 아들을 군에 보낸 친구가 혼자서 데려다주고 부산으로 내려오는 길에 너무 쓸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바쁜 남편을 졸라 함께 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연병장에 입소식을 하는데 처음 몇 가지 주의사항과 동영상을 보여주더니 이별의 시간을 통보했다. 순간의 일이라 미리 생각해 뒀던 여러 장황한 설명은 한마디도 못하고 그저 눈물이 앞서서 그냥 입 안에서만 인사를 했다.

엄마의 약한 모습을 보면 아들이 힘들어할까봐 눈물을 보이지도 못하고 끝까지 삼켰는데 기어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 모습 보지 않으려고 아들은  허공에다 시선을 옮겼다. 하고 싶은 말들이 다 어디로 숨었는지 한마디도 못하고 그냥 고개만 꾸벅거린 뒤, 모집병이라는 팻말 쪽으로 뛰어갔는데 운동장은 블랙홀처럼 아들을 삼켜버렸다. 흔적도 없이 무리만 보였다.

한꺼번에 수 백 명이 집합하다보니 도대체 어디에 줄을 섰는지 보이지도 않았고 찾을 수도 없었다. 몇 가지 의식을 치르고 난 뒤 마지막으로 가족들이 보는데서 운동장 한 바퀴를 돌아들어갔다. 가족들은 전쟁터로 가는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려는 듯 발 뒷꿈치를 치켜들고 아들을 찾기에 기를 썼다.

나 역시 사람들로 이루워진 벽을 뚫고  맨 끝 줄까지 두 눈을 부릅뜨고 아들을 찾았지만 그 어디에도 내 아들은 없었다. 무심한 녀석이란 생각이 들다가도 괜한 눈물이 날까봐 그냥 지나 갔겠지 생각하니 가슴이 저렸다. 아! 어머니의 이름이 이런건가! 한 번이라도 아들모습 더 보려고 마치 생사의 갈림길에 선 것처럼 끝까지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아빠들은 옷자락을 당겼다. 주차장에서 빨리 빠져 나가려면 지금 가야한다고 우리 남편 마찬가지였다. 수 백대의 차가 빠져 나가려면 빨리 움직여야 한다면서 손을 잡아 이끌었다. 운동장 한바퀴 돌고 어딘가의 건물로 들어가는데 마치 한 마리 긴 뱀이 미끄러지듯 스르르 들어가는것 같았다. 마지막 꼬리까지 감추는것을 보고 돌아섰다.

돌아 오는 길엔 안개가 흔적없이 걷히고 햇살이 맑았지만 돌아오는 내내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도 뒷 자석에 묻은 아들의 흔적을 자꾸 쓰다듬었다.

이제야 오빠 셋을 군에 보낸 엄마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처음 큰 아들을 보내고는 잠을 못잤고 첫 휴가 나올 때는 맨발로 마당으로 뛰어 나갔다고 했는데 이제 그 옛날 엄마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았으리라. 삼사일 후면 입고 갔던 옷과 신발이 소포로 돌아 올 때면 마치 아들이 온 것처럼 한바탕 눈물을 쏟았다고 했는데 나 역시 여느 엄마들처럼 그러겠지.
 

권갑숙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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