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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엔 향기가 그윽

[완도의 자생 식물] 32. 씀바귀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8.01.13 10:20
  • 수정 2018.01.13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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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맛을 아는 사람만이 기쁨을 안다. 그 기쁨은 그리움을 낳는다. 눈 속에 파묻힌 쓴맛은 아직 심장 소리가 들린다. 얼마나 지독한 쓴맛을 가지고 있기에 그 열렬한 가슴을 파묻고 있는가.
아직도 입 안에서 쓴맛이 얼마나 있기에 말을 못할 정도인가. 흰 눈 위에 새파란 나뭇가지는 내 운명처럼 휘날린다. 관찰, 상상, 갈망, 의욕은 내 안에 운명처럼 서있는 고뇌다. 내 따뜻한 피가 심장부터 모세혈관까지 이르게 하는 것도 고뇌에 찬 쓴맛이 있기 때문이다. 쓴맛은 눈으로도 냄새로도 알 수 없다. 입맛으로 느껴봐야 한다. 어린 날에 쓴맛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씀바귀나물이다.

논두렁, 밭두렁에서 함께 모여 산다. 국화과로 여러해살이로 겨울에는 약간 홍조 색을 띠며 몸을 낮게 낮춘다. 겨울을 나는 야생화들은 몸을 땅에 엎드린다. 추위를 견뎌내기 위해서다. 이와 비슷한 왕고들빼기와 민들레도 같은 방법으로 겨울을 넘긴다. 예전에는 봄나물로 쓰디쓴 씀바귀나물을 먹었다.

하지만 많이는 먹지 못했다. 쓴맛을 입안에서 완화할 만한 음식이 없었다. 고작 밥뿐이다. 그나마 밥과 나물이 있다는 것이 그런대로 살만한 집안이다. 지금은 먹을 것이 풍요로워 씀바귀와 곁들어 많이 먹는다. 들에 핀 씀바귀 꽃은 5월에 노랗게 핀다. 산에서 핀 씀바귀 꽃은 들에서 피는 것보다 훨씬 작게 피고 색도 하얀 베이지색을 띤다. 겨울 자생식물들은 매서운 칼바람과 눈 속에서도 견뎌야 한다. 스스로 강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여러 번 눈을 맞은 야생화는 나물을 해놔도 맛이 담백하다.

그 이전에는 풋내가 난다. 시련과 고난은 모든 운명을 만들어 낸다. 사람은 사람답고 만들고 사회는 사회답게 국가는 국가답게 만든다. 쓴 것을 먹는 데에는 안으로나 밖으로나 쓴 냄새를 내지 말라는 뜻도 있다. 몸에 쓴 것이 들어가면 마음은 온유한 것으로 바뀌게 한다.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시련과 고난의 덩어리이지만 눈물 한 방울에 그윽한 향기만 가득 차 있다. 먼 성지를 떠나고 험한 산을 넘고 넘어 자기 수행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가장 가깝게 있는 사물을 내면화하면서 창조해 나가는 것도 자기 수행일 것이다. 그 고뇌가 기쁨이고 희망이고 그리움이다.

씀바귀는 눈 속에 있다. 눈 속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는 게 아니라 수행 중이다. 세월을 짧다고 할 때 한편 길게도 보아야 한다. 새해 벽두부터 흰 눈 같은 기쁜 소식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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