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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군전은 단단해 직진성 좋은, 또 흔한 완도붉가시로 만들었다”[이슈 인물]조선수군 미사일 '대장군전' 복원, 배철지 대표
박주성 기자 | 승인 2018.01.07 17:03
배철지 / 들사람 목업방 대표


올해 완도의 문화적 공로라고 하면 아무래도 가리포진 재조명 활동과 복원사업이 본격화된 것이 아닐까 싶다. 완도문화원에서부터 일기 시작한 완도 가리포진 재조명 활동은 바다 깊은 곳에서 진주를 발견해 낸 바로 그것이었다. 이 가리포진 재조명 활동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이 있었으니 바로 정유재란 때 사용된 가리포 김씨 등이 제조한 ‘대장군전’을 지난 11월말 복원한 것이 아닐까. 완도문화원 회원이면서 이번 ‘대장군전’ 복원에 역사적 사명을 갖고 온힘을 쏟아낸 들사람목업방 배철지 대표를 만나 대장군전을 복원하는 과정에 대한 우리 역사 이야기를 들어봤다. 

● 어디에서 규격을 찾아 대장군전 복원을 시작했나
별로 기록이 없다. 융원필비나 화포식언해 등 문헌기록에 대장군전은 이렇게 만든다는 것만 나온다. 주로 이런 문헌들은 육상무기 기록이지 바다무기 기록은 없다. 두루 종합해 천자총통이든 지자총통이든 임진왜란 때 사용기록을 확인하면 규격이 맞지 않는다. 배에서 사용한 화포는 규격이 달랐을 것으로 본다. 반동이나 함선 선적 등 때문에 지자총통급이라도 규격이 작았을 것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사용한 함선은 판옥선과 거북선이다. 실질적 사용화포는 지자총통일 것으로 추측한다. 천자총통은 당시 사용을 잘 안했다. 천자총통은 화약 30량이 들어가고, 지자총통 20량이 들어간다. 20량이면 700g 정도 화약이 소요된다. 화약이 많이 들어가면 반동을 못견딘다. 지자총통 규격이 더 작았을 것이다. 문헌상 대장군전보다 작다. 구키 요시타카 일족이 일본에서 보관한 대장군전을 올해 정유재란 420주년(7주기) 전시회에 가져올 때 실측했다. 실측 자료에 의하면 탄두 없어진 것을 제외하고 포신과 철띠 등 놀랍게도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 대장군전을 붉가시나무로 제조했다고 확신하는 이유는
완도는 참가시가 드물다. 여러 가시나무들이 있는데 종가시, 붉가시 등이 주종을 이룬다. 붉가시나무를 제외하고 나머지 가시나무들 비중은 0.9% 다른 가지나무보다 붉가시나무 비중은 0.9~1.05%다. 다른 나무들보다 붉가시나무가 더 단단하다. 
대장군전을 보면 탄성 있으면 직진성이 떨어진다. 20량 정도 화약폭발할 때 폭발력을 견뎌내는 나무가 필요하다. 그 당시 화포 구조가 화약 팍팍 집어넣고 격목 앞에 대장군전을 대놓는다.
나무가 무르면 발사하다가 터져 버린다. 이왕이면 직진성 좋고 단단한 나무를 사용하는게 지극히 상식적이다. 그래서 붉가시나무를 사용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또 완도는 붉가시나무가 흔했다. 

● 임진왜란 초기에도 사용했던데 완도 가리포진의 역할은
군사무기 제조 장소였을 것이다. 병기창! 조선왕조실록 기록으로 추측해 보면 가시목은 군사무기로 중요하게 사용됐다. 대장군전을 제조하는데 중요한 재목으로 제공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순신 장군도 고금 덕동진에 조·명연합군 사령부를 설치한 이유 중 하나 아닐까? 대장군전을 만들 재료가 가리포엔 무궁무진했다.
일본수군의 세끼부네는 가볍고 빠르다. 그러니 일본수군의 전쟁시 전술은 접근전 즉 백병전이다. 조선수군의 판옥선은 무겁고 단단했다. 그래서 방어진을 구축하고 사정권에 들어오면 화포를 쐈다. 일본수군의 접근을 방해하기 위해 대장군전이 필요했다.

● 복원과정에서 힘든 점은 없었나
실물이 명확하지 않다보니까 탄두 가공에 어려움이 있었다. 날개를 제조·취급하는 업체가 없어 다른지역을 찾아가 제작하는 등 애로점이 있었다. 나무 성질을 잘 모르면 가공이 어렵다. 붉가시나무는 성질이 사나운 놈이다. 툭 잘라서 그냥 두면 갈라져 버린다. 옛 장인들도 다루기 어려운 나무였다. 2년 묵은 맞춤 나무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복원작업이 무에서 새로 시작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자생목 가지고 만들어서 어려웠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장성군은 없는 홍길동도 만들어 활용했다. 대장군전엔 완도 가리포진 제조가 명시돼 있다. 완도는 있는 것도 왜 관심을 갖지 않는지 모르겠다. 지금 시대는 역사와 문화를 판매하는 시기다. 완도군에서 역사와 문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시대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것은 문화를 팔아먹는 것 외에는 없다. 완도군이 100% 동의하지 않더라도 향토문화는 개발·보존 가치가 있다. 이런 사업들은 군에서 하지 않으면 누구도 하기 어려운 것이다. 군 공무원 잣대로 뭘 재서 할라고 하지 말고 함께 협조하며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발굴해 나가야 한다. 세상에 전문가들이 많다.

박주성 기자  pressman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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