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저이도 저리했는데... 난, 살 수가 없는 상황인데

[에세이-고향생각]배민서 / 완도 출신. 미국 거주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01.07 16:47
  • 수정 2018.01.07 16:48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달라스에 갔다가 한국서점에 들렀다. 입구에 가지런하게 붙여진 낯익은 한국말의 베스트셀러 리스트가 보였다.

잠깐 멈추어 들여다 보았다. 요즘 사람들은 어떤 책들을 좋아할까? 이것은 어쩌면 우리들의 욕구리스트일지도 모른다.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가 한 눈에 들어왔다. 아니 제목부터가 마음에 들었다. 나 역시 언어나 예술가의 창작품 속에 나름의 온도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까닭이었다. 그는 나에게 공원을 산책하듯 찬찬히 음미하며 읽어가라고 권유했지만 나는 단숨에 달려가 한 입에 먹어 버렸다. 그러나, 나는 느낄수 있었다. 그가 말하고자 한 그 소중한 뜻을 ......

그리고 갑자기 나는 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유튜브를 통해 지난 봄, 그의 고려대학 강좌를 들어 보았다. 젊은 친구였다. 감성적이고 사려깊은 생각을 지닌 작가, 그가 말했다. 상처받고 아파본 이가 아픈 사람을 더 쉽게 알아 본다고 ......,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저 눈물이 나왔다.

나의 살아온 인생이 그러했다. 그래서 고난이, 고독이, 아픔이 진정한 스승이 될 그 순간까지 사랑하려고 가슴에 꼬옥 꼭 묻어 다독이고 다독이던 세월이었다. 지난 주일, 한 시간 남짓 거리에서 도넛가게를 운영하시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2-3년 전,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신 후에 많이 우울해 하셨고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며 눈물만 흘리시던 그런 분이셨다. 그런데 그분의 얼굴에 잔잔한 평안이 엿보였다. 이유인즉, 작년 이맘 때에 한 여성도님의 간증이 시초였다고 했다. 오랜기간 골초 담배를 끊지못해 결단을 하고 힘겹게 성경을 한번 다 썼더니, 희한하게도 담배냄새가 역겨워졌다는 내용이었다. 그 간증을  들으며 그녀는 생각했었다.

"저이도 저렇게 했는데..., 나는 지금 더 힘든데..., 살 수가 없는 상황인데..."

그리고서 성경을 창세기부터 꼬물락 꼬물락 그려가기 시작했었다. 어느덧 일 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그분은 아직도 구약의 끝부분을 쓰고 있는 중이다. 그러던 중에 자신이 변해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전에는 가게에서 아들과 일하다가 속을 끓이면 참지 못하고 끝장을 보는 성격이었는데, 요즘은 그저 웃으면서 "그래~" '그게 뭐 그리 대수인가!' 라는 생각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속을 썩이던 아들이 서서히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참석하던 영어클래스에서 한국할머니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남편과 사별하시고 펑펑 눈물을 쏟는 그분을 보니 왠지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자꾸만 마음이 쓰이기 시작했단다.

"오늘은 또 얼마나 힘들어 하실까?"  전화로 그분의 안부를 챙기기도 하고 함께 샤우나에 가서 서로의 아픔을 나누기 시작했었다.

이번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할머니가 예쁘게 포장한 선물을 내밀며 말하셨다.

"당신은 하늘이 보내주신 나의 천사야!" 그말에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니, 아! 자신의 아픈상처의 흔적이 누군가의 마음을 감싸 안을수 있었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아픈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그 눈, 상처받았던 이만이 느낄 수 있는 그 섬세한 마음은.., 분명 숨겨진 우리들의 보석이 분명했었다. 이 겨울에는 조용히 그 보석같이 빛나는 눈과 마음을 열어 누군가를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