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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폐하, 전란이 끝나면 이순신을 명나라로![연말 특집]한중 우호의 상징으로 언급된 이순신과 진린 이야기
김형진 기자 | 승인 2018.01.07 16:11


중국의 쟝웨이린 교수.
그는 1989년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소위 동북공정을 맡는 핵심 책임자였다. 하지만 1995년 고구려의 역사를 편입하는 과정에서 돌연 손을 떼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가 말했다. “역사학자란 후세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일을 해서는 안된다.” "진정한 위인은 자기 가족만을 위해서 자신의 조국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만인을 위하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위인이며 나는 그 위인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 위인은 누구였을까?
어느 날, 그는 학생들에게 거북선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생각하고 있는대로 배다. 지금부터 400년 전에 만들어진 전투함으로 이 전투함을 만든 인물이 바로 이순신이다”

“400년 전 조선과 왜국의 전쟁 시 조선을 구한 이순신 장군이야말로 당시 위기의 청나라를 구할 유일한 영웅”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학생들에게 “일본에서 열렸던 임진왜란 모의전쟁에서 만일 이순신 장군이 왜수군의 장수였다면, 조선은 물론 명나라에 이어 태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까지 모조리 왜국에 점령되었을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했다.

이 밖에도 이순신의 평가를 다양하고도 심도 있게 평가하며 감동적인 강의를 이어갔는데, 역시나 역사학자의 양심을 가진 이다.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수군 도독이었던 진린이 이충무공에게 존경과 예를 다한 이야기도 전하는데,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명나라 수병 도독 진린이 와서 남쪽으로 내려와 이순신의 군대와 합쳤다. 진린은 성질이 사나워서 남과 부딪치는 일이 많았으므로 사람들이 다 두려워했다. 우리 임금께서는 그를 내려보낼 때 청파(서울 용산에 있던 마을 이름) 들판까지 나와서 전송했다."

"진린의 군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을의 수령을 때리고 욕했다. 찰방(역참의 일을 맡아보는 벼슬) 이상규의 목을 새끼줄로 매어 끌고 다녀서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것을 보고 나는 통역관을 통해 풀어주도록 했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대신들에게 이런 사정을 말했다." 이어 유성룡은 선조에게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진린은 이순신의 권한을 빼앗고 우리 군사들을 함부로 괴롭힐 것인데, 이를 거스르면 화를 낼 것이고 따라주면 제 마음대로 다 할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일본군과 싸우면 이순신의 군대는 질 것이 뻔합니다."

여러 대신들은 유성룡의 말에 고개는 끄덕이면서도 탄식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뜻밖에 반전이 일어났다.
얼마 후, 왜수군의 배가 가까운 성으로 쳐들어왔는데, 이충무공이 군사들을 보내 이를 다 쳐부수고, 적군의 머리 40개를 베어 모두 진린에게 주며 이 승리를 진린의 공으로 돌렸다. 진린은 자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대접을 받았다고 하면서 매우 기뻐하며 선조에게 말했다. "이순신은 천하를 다스릴 만한 뛰어난 재주와 무너진 하늘을 메울 만한 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후, 명황제에게 이충무공을 천거하는  장계를 올리기에 이르렀는데...

"황제폐하! 이곳 조선에서 전란이 끝나면 조선의 왕에게 명을 내리시어 조선국 통제사 이순신을 요동으로 오라 하게 하소서"

"신이 본 이순신은 그 지략이 매우 뛰어나고 그 성품과 또한 장수로 지녀야할 품덕을 고르게 지닌바 만일 이순신을 황제폐하께서 귀히 여기신다면 우리 명(明)국의 화근인 저 오랑케(훗날 청)를 견제할수 있을뿐 아니라, 저 오랑케의 땅 모두를 우리의 명(明)국으로 귀속시킬 수 있을 것이옵니다."

"혹여 황제폐하께서 통제사 이순신의 장수됨을 걱정하신다면 신(臣)이 간청하옵건데 통제사 이순신은 전란이 일어나고 수년간 수십차례의 전투에서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음에도 조선의 국왕은 통제사 이순신을 업신여겼으나 그러한 모함과 멸시에도 굴하지 않고 국왕에게 충의를 보였으니 이 어찌 장수가 지녀야 할 가장 큰 덕목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조선국왕은 원균에게 조선통제사 지위권을 주었으나 그 원균이 자만심으로 인하여 수백척에 달한 함대를 전멸케 하였고 단 10여척만이 남았으매 당황한 조선 국왕은 이순신을 다시 불러 조선 수군 통제사에게 봉했으나, 이순신은 단 한번의 불평없이 충의를 보여 10여척의 함대로 수백척의 왜선을 통쾌하게도 격파하였나이다."

"만일 전란이 끝이 난다면 통제사 이순신의 그 목숨은 바로 풍전등화가 될 것이 뻔하며, 조정대신들과 국왕은 반드시 통제사 이순신을 해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순신은 명나라 만력제에게 사후 추존이 아닌 생전에 대명수군도독(大明水軍都督)을 제수 받게  되는데, 이는 명나라 정1품 벼슬로 선조대왕보다 높은 벼슬이었다.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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