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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이 지나 열흘간의 사랑

[문학의 향기]교산과 매창의 사랑 6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17.12.30 17:47
  • 수정 2017.12.30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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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쳤구나! 미쳐! 미친 것이 분명하다. 내가 나 같지가 않구나. 내가 이런 사람이었다니...”
천하의 예의범절을 모두 섭렵했던 유희경 조차도 "내가 미쳤구나"로 시작하는 문장을 수시로 뱉어냈다. 그야말로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이 관통을 이루는 순간. 그건 마치 예리한 칼로 목줄기를 그어가는 날 선 신비로움 같았고, 그 신비로움이 혈관을 타고 들어올 때는 천둥소리처럼 요동치다가는 단숨에 대동맥을 관통하는 공포의 전율 같았다. 평생토록 예의와 법도에 몸을 바쳤지만 매창 앞에서는 아무 것도 부끄럽지 않았고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
물론 매창 또한 그랬다.
그의 입에서 한 글자라도 떼어지는 순간이면 영혼이 타오르는 선연의 순수를 맛보는 것이라, 이 겨울밤을 온통 뜨겁게 열광시키는 붉은심장이 파열하는 것처럼 타올랐으리라. 이 시간은 여태껏 그들이 가졌던 어떤 행복과도 비교할 수 없이 특별하고 귀하며 소중했다.
유희경이 부안에 머무는 동안 매창은 기방의 문을 걸어 잠궜다.
나중에 감당할 일이란 내 알 바 아니었다. 그것만이 지금 그녀가 일심을 바칠 일이었기에...
오로지 그를 위해 가야금을 탔고, 술잔을 따랐으며 그 모든 순간을 시로 적었다. 마음이 다 하지 못한 말, 몸이 다 바치지 못한 연정은 시에서 마지막 불꽃으로 피워 올렸다.
그런데 그들의 사랑은 사랑하는 순간 이별이라!
유희경은 서울로 돌아가고 이듬해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유희경은 이때 의병활동을 펼친다.
전란은 둘 사이를 갈라놓고, 그 시간을 더욱 애틋한 그리움의 감옥 속에 가둬 버린다.
이때 매창의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져도 나를 생각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더라!"의 절시가 탄생한다. 이후부터 매창은 수청을 들어야 하는 기생의 본분마저 내려놓고 하는 이러한 시를 읊는다.

취한 손님에게
취한 손님이 명주저고리
옷자락을 잡으니
손길을 따라 명주저고리
소리를 내어 찢어지네.
명주 저고리 하나쯤이야
아까울 게 없지만
임이 주신 은정까지도
찢어질까 그게 두려울 뿐이네

그 후, 유희경과 매창은 16년 만에 다시 해후하는데, 매창의 나이 34세. 유희경은 62세. 퇴물이 된 매창과 남성성이 사라진 유희경이었지만 둘은 열흘간의 진한 사랑을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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