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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완전, 촌년, 촌사람이었다

[완도의 겨울]겨울, 완도 그리고...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7.12.02 09:26
  • 수정 2017.12.02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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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주도의 설경.


유년시절.
더 나이를 먹고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 가장 되돌아가고 싶은 한 때를 기록해두려고 한다. 

나는 촌년-촌 사람이였다.  
섬에서 태어났기에 바다의 그 변화무쌍한 감수성을 소유했으며, 4살 이후로 강과 들이 내 삶의 배경이 되어 들풀마냥, 산토끼마냥 살았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피아노와 바이올린 협주곡같은 형언할 수 없는 연주가 가슴 저 밑바닥에서 섬세한 파도소리처럼 시작되는 것 같다. 
73년생 소띠, 3월생이라 7살에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국민학교(그 당시)를 다닐 무렵 우리집은 할머니와 엄마는 큰 길가에서 대중식당겸 점포를 했고, 아버지는 돼지농장을 크게 했다. 
친구들 중 유일하게 농사일을 거들지 않고 놀고 먹기만 하는 부유한 집 자녀, 집도 두채나 되어서 할머니와 자녀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식당과 지척에 있는 거리에 땅을 사서 집을 지어 주셨다. 아름다운 그 시절을 생각하니 눈물이 핑. 그 시절엔 누구든 먹고 살기 바쁜 때라 아무도 공부하라고 강요는 하지않았다. 적어도 내가 어울린 내 동무들은 모두 공부와 담을 쌓고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였다. 
 

그때만 해도 사계절이 뚜렷했던 때로, 우리는 대보름날이면 깡통돌리고, 찰밥을 얻으려 다녔고, 봄이면 냉이. 쑥, 진달래 뜯으러 돌아다녔고, 여름이면 친구네 오두막에서 수박을 먹거나 강에 가서 멱을 감았다. 대나무숲에 집을 지어 아지트로 만들기도 했고, 잔디가 깔린 맷뚱(전라도 사투리, 묘지)에서 놀았으며, 소나무에 그네를 만들어 그네를 타기도 했다. 

가끔씩 집에서 냄비며 쌀, 반찬을 가지고 와서 돌다리 밑에서 진짜 밥을 헤 먹기도 했으며 겨울이면 산으로 불쏘시개로 쓸 솔잎들을 자루에 담아오거나 나무를 하러 다니곤 했다. 제법 먼 산까지 가서 나무를 하기도 하고, 밤도 줍기도 하며 자연과 벗삼아 많은 놀이를 하며 살았다. 눈이 오는 날이면 경사진 맷뚱이나 마을회관 앞 경사로에 비료푸대를 깔고 신나게 타고 내려오다 동네 어른을 받았던 일, 썰매를 만들어 얼음위를 타거나 얼음위에서 팽이를 돌리던 일...아..그 겨울날 동안 뜻뜻한 방구석에 앉아 구은 고구마를 먹던일, 밤새 동무들과 수다떨던 일..

그 시절엔 그렇게 놀았다. 노는게 일이였다. 그때는 나는 키도 작았고 몸도 말랐다.(지금은 키작고 통통) 그런데도 정말 빨빨거리며 이 마을 저 마을로 돌아다녔다. 

내 내면은 방랑기가 가득했고, 자유로운 영혼이였으며 바람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놀러 다녔다. 우리 집에서 짝궁집까지는 꽤나 먼거리인데도 가끔 놀러가서 하룻밤 자고 오기도 했다. 그 거리가 아이 걸음으로 2시간은 족히 될 것이다. 길은 언제나 섬진강을 따라 나 있었고 강 반대편은 산이여서 외지고 무서울 법한데도 나는 꿋꿋히 친구집에 혼자 놀러 갔다. 
 

다도해 솔섬(송도).


어디 그뿐인가? 방학때면 내가 태어난 섬, 외가집으로 자주 놀러갔는데, 주로 혼자 갔다. 버스를 갈아타고 배 선착장까지 버스를 타거나 걸어가서 선착장에 도착해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갔다. 외가집이 있는 섬에서는 여름에는 바지락을 팠으며 겨울에는 굴(석화)를 깠다. 밀물이 들면 바위에 올라가 노래부르고 춤추며 놀았고, 물나면 갯것을 하러 나갔다. 여름에 바다에서 수영하다가 썰물에 밀려 죽을 뻔도 했다. 

또 할머니는 무속 신앙이라 자주 산으로 백일기도 하러 가셨다. 그럴 땐 영락없이 학교가 빨리 끝나는 토요일에 각종 식량을 머리에 지고 1시간 넘게 등산을 하여 할머니가 계시는 곳에 먹을거리를 배달하곤 했다.

산에서 할머니가 산기도를 하는 동안 멍하니 나무들을 보면서 새소리만 들었던 것 같다. 이 모든 일이 내가 초등학교시절에 일어난 일이다. 내 삶에서 가장 화려하며 내면의 감수성이 자연을 닮아 자유분방함을 소유한 사람이 된 이유. 

아... 그 시절 내 내면에 하나 하나 박히 보석들을 어떻게 빼내어 글로 적을 수 있단 말인가?! 도저히 언어를 사용해서는 말 할 수없는 그 시절의 기억과 아름다움. 

이젠 만나지도 볼 수도 없는 그 시절의 향기... 오늘 아침은 구슬픈 바이올린의 선율처럼 울려퍼지는 그 시절이 몹시도 그립다. 
 

강미란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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