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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끌어안고 눈물로 구석구석 어루만져 주리라!

[에세이-고향생각]배민서 / 완도 출신. 미국 거주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7.12.01 09:31
  • 수정 2017.12.01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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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그 시간 때문이란다.'
 창문의 블라인드를 열었다. 맑은 햇살이 창가에 놓인 스탠드와 엔틱스런 피아노, 그리고 쇼파에 다가와 살며시 자리하며 앉는다. 휴일 아침이면 변함없이 나는 커피 한 잔을 들고 이렇게 소탈하고 고요한 나만의 하루를 시작한다.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장만했었던 디너테이블은 어느 사이엔가 그림을 그리는 작업테이블이 되었고, 남향과 서향에 위치한 커다란 창을 통해 내다보이는 이곳 주택가의 풍경은 평화롭고도 고요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뭇가지가 낙엽을 떨구며 부르르 몸을 떠는 그 시린 흔들림이나, 작은 새들이 가지 끝에서 가지 끝으로 만 옮겨다니는 그 서글픔들이 아련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도 누렇게 빛을 바랜 사진들과 그것을 그려내려는 서툰 연필의 잔재들이 아직도 허상속에 너브러져 빛을 기다리는 듯 하였다.
 어제는 한 아이를 떠나 보냈다. 지난 봄에 백혈병으로 진단받아 항암치료를 받았었고 면역력이 없어 대부분의 시간들을 무균실에 머무르며  많이 친해졌던 29살의 흑인 청년 이었다. 현대의학의 온갖 치료에도 불구하고 깊어져가는 병세로 인해 호스피스로 퇴원을 결정한 것이다. 그 아이의 남겨진 시간이 일 주일이나 될련지 모르겠다. 침상에 누워 힘없이 웃으며 "Hi minsuh!" 하며 인사를 건네는데 내 가슴은 쇠뭉치에 눌린듯이 답답하기만 했다.
'아... 너를 어떡하면 좋으니!!' 무르익은 단풍처럼 벌써 그 아이의 온 몸 세포들은 찢기고 터져 여기저기로 검붉게 흘러 나오고 있었다.
구부러지고 휘어져 꺽이기까지 하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보려는 갖은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떠나야만 하는 우리의 시린인생들이 뒹굴며 밟히는 낙엽들처럼 나의 영혼을 울게하고 있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구르몽의 이 시 한 구절이 아리도록 애절한 이유는 나이를 먹어가고 있음이며 그 만큼 사색은 깊어져 간다는 의미 이겠지!
부모님 산소에는 늘상 잡풀들이 먼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양지바른 묘지에서 잡초들을 뽑아내는 것은 늦둥이였던 내가 부모님의 흰머리를 뽑아주던 기억같기도 하고, 밤마다 파고들었던 엄마의 젖가슴을 어루만지는 느낌이기도 했다. 13살이 되던 그 해까지도 엄마의 품 속에서만 잠들던 철없는 막내딸이 세상에 다시 없을 안식처 같았던 엄마를 잃고 부딪혀야 했던 세상은 온통 시리고 아팠다.
그런데...... 나는, 이 시리고 아파야만 하는 그 길을 천직이라며 걸어 들어갔고, 이 처절하게 펼쳐진 가을의 끝자락을 영혼으로 어루만지며 손끝으로 그려내고 싶어졌다. 그러기에 나는 더 가까이 다가가 함께 붉어져 온 몸으로 바르르 떨며 울어야 하리라! 그게 견뎌야 할 슬픔이고, 감내해야 할 아픔이라면 당당히 다가 가리라! 너를 끌어안고 눈물로 구석구석 어루만져 주리라!
그리고 ...... 어느날엔가는, 물결치듯 잔잔한 당신의 영혼이 느껴지는 그러한 작품을 완성시켜 보리라!
 

배민서 / 완도 출신. 미국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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