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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심장을 가진 남자 '전이양'

[이 사람]완도군체육회 전이양 상임부회장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17.12.01 08:58
  • 수정 2017.12.0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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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양 / 완도군체육회 상임부회장


긴 밤이 지나고 태양이 떠오르면 그 햇살은 가장 먼저, 미친 듯이 뛰어내린다. 그의 심장이다.
그 다음엔 온몸이 다 젖어 있거나 얼어있는 지상을 내려다 본 후에 자신의 몸을 한껏 달구기 시작한다. 그 햇볕은 간밤의 어둠과 슬픔, 우울이 쟁였는지 언제 무슨 일이 있기라도 한듯 보듬기 시작한다. 그의 가슴이다.

그 가슴은 사해만물의 고독과 고뇌를 하나하나 녹여내면서 내 마음보다도 훨씬 먼저 화답이라도 하듯 타인의 온몸을 온전하게 감싸 안는다. 그럴 때, 태양의 빛은 찬란하게도 무한하게도 빛이 난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 호부(虎父)의 견자(犬子)가 없다고 했던가!
태양의 심장을 가진 남자. 전이양 완도군체육회 상임부회장.

그는 완도 민주화운동의 주축이었으며, 완도의 정신으로 대변되던  전금죽 선생의 아들이다.
지난 14일, 완도군 체육회 사무실을 찾아 그를 만났다. 수인사 후, 곧바로 아버지에 대해 소회를 밝혀 달라고 하자, 신념에 찬 표정을 지어보이며 전이양 상임부회장이 입을 뗀다.

"당시 시골은 어려운 환경임에도, 할아버지(전작하 선생)의 향학열은 지극하셨지요. 아버지는 국민대학교를 졸업하시고, 작은 아버지는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후 미시간 주립대 석좌교수로 은퇴하셨죠" "아버지는 대학시절에 6.25 전쟁을 겪으셨는데, 서울에서 약 한 달여를 걸어서 여러 죽음의 고비 끝에 완도까지 내려오실 수 있었다고 하셨는데, 어렸을 때 종종 버스를 타고 가게 되면 이곳 저곳을 가르켜 주면서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 주셨죠"

"그때, 아버지의 손을 잡고 논둑길도 걸었던 기억이 나는데, 아버지의 손이 참 따스했어요"
"아버지는 귀향 후 할아버지 슬하에서 농사일과 상업(어업용 물품공급)을 하시며 당시, 수출산업이였던 미역가공업 등으로 가족들을 돌보셨습니다"

"그러던 중 고향의 친척 어르신인 김선태 초대 국회의원(무임소장관 역임)의 영향을 받아 함께 군사독재시절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시게 되었죠." "김선태 장관 사후, 묘역까지 조성해 주셨는데, 참 각별한 모습이었습니다" "당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주화운동으로 군부정권의 탄압을 받던 시기로 아버지는 완도 지역에서 지역 내 여러 민주화동지분들과 함께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셨다고 합니다."

그에게 아버지 전금죽 선생에 대한 잊지 못할 기억이 있냐고 묻자, 그는 학창시절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몇 차례 시험에 실패한 때가 있었다고 했다. 그때마다 아버지 전금죽 선생은“아들아! 아파하지마라!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라면 언제든 모든 것을 할 수 있단다”그는 아버지의 그 짧은 격려의 말이 힘들고 어려운 순간마다 수천마디의 위로보다도 희망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을 때 감정이 복받쳐 올랐는데, 1992년 전금죽 선생의 칠순기념으로 가족 친지 20여명이 광양, 진주, 부곡 등으로 여행을 다녀오던 중이였다고. 당시엔 이유를 묻지 못했지만 가족들이 즐겁게 이야기하며 웃음꽃을 피우는 도중에 갑자기 아버지가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걸 보았단다.
아마도 지난 시절 아버지의 인생을 돌아보며, 그 소회가 함의 된 눈물이 아니었겠냐며 지금도 힘들 때면 그 눈물이 떠오른단다.

전금죽 선생은 가족여행을 다녀 온 다음해인 72세의 일기로 타계했는데, 그는 "돌이켜보면 제가 느끼는 아버지의 모습은 가족을 위한 사랑과 희생, 그리고 어렵고 험한 시골 여건에서도 결코 결기를 잃지 않으셨던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여망으로 살아오셨던 분이었다"고 말했다.
"한평생 가족과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관심으로 살아오셨던 아버지께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 모습을 보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하는 생각을 해보며 아버지의 기억을 꺼내 봅니다."

현재 완도 대성병원 병원장이기도 한 그에게 어떻게 지역 의료계에 투신하게 됐다고 묻자, 그는1997년 완도대성병원을 개원하기 전에 10여년 동안 완도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였다고.
“그때는 완도의 의료시설이 아주 열악했습니다. 응급환자가 발생해도 제대로 된 응급의료시설을 갖춘 곳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완도의 응급의료 환경을 개선하고자 4명의 의료진이 힘을 합해서 완도대성병원을 시작했습니다.”

1997년 6월 개원한 완도대성병원은 2017년 현재 7개과 120병상의 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 성장하였으며 CT, PACS, OCS, EMR등 최신 의료장비 및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또한 2007년부터 인공신장실을 운영하여 완도 지역민들에게 양질의 의료서비를 제공하고 있으며 매년 무료성인병 건강검진, 낙도 의료봉사 및 작은 열린음악회등을 통해 지역주민에 대한 봉사와 소통도 잊지 않고 있는데...(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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