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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시론]박준영 / 변호사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7.11.18 13:27
  • 수정 2017.11.18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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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 변호사

절실하게 상대방에게 공감해야 선의가 나오고 한동안 유지된다고 봅니다. 공익사건도 공익적인 생각만으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2015년 참 많은 시간 한 사건에 집중했습니다. 무기수 김신혜 씨는 저와 비슷한 구석이 많았습니다. 고향, 새어머니,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첫째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누워있던 장소... 저희 아버지는 업무상과실치사사건의 피해자였습니다. 2001년 11월 16일 검사의 검시는 완도 대성병원 영안실 콘크리트 바닥에서 이뤄졌습니다. 아버지가 누워 있던 곳은 김신혜 씨의 아버지가 1년 전 누워있던 그 자리였습니다. 저와 김신혜 씨는 같은 장면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제 눈은 사팔(사시)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수술을 했지만, 지금도 중심을 잡지 못하는 눈이 한쪽으로 쏠릴 때가 있습니다. 요즘 사진 찍자고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카메라가 바로 앞에 있는 셀카 때는 의도적으로 한 곳을 집중해서 보려고 합니다. 함께 사진 찍는 분과 보는 지점이 달라 어색할 때가 간혹 있습니다.

그리고 어릴 적 아토피가 심했습니다. 약이 듣질 않았습니다. 눈과 피부 때문에 엄마 손을 잡고 이곳저곳을 참 많이 다녔습니다. 섬에 살았기 때문에 육지에 나가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목포까지 5시간 배를 타고 갈 때도 있었고, 땅끝으로 갈 때는 비포장 길을 한참 가야 했습니다. 배 멀미를 할 때는 내릴 곳이 없어서 속을 뒤집어야 했고, 버스를 타고 갈 때는 차안에서 비닐봉지로 뒤처리를 했습니다.

엄마는 나이 서른아홉살에 돌아가셨습니다.  어린 자식들을 두고 떠나는 게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더 돌봐줘야 하는 데 그러지 못하는 게 한으로 남았을 겁니다. 엄마는 눈을 감지 못했고, 할머니가 곁에서 계속 눈을 쓸어내렸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눈은 감기지 않았고, 그대로 관에 들어갔습니다.

낙동강변 2인조 사건이 제게 각별한 이유는 ‘공감하는 지점들’ 때문입니다. 아들의 눈, 눈을 고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모정, 한을 품고 뜬눈으로 세상을 뜬 엄마에 대한 기억입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박상규 기자의 글을 인용하자면, 청소년소설과 동화는 밝고, 예쁘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은 어른들의 판타지입니다. 세계적인 고절 반열에 오른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아버지가 제제를 허리띠로 마구 때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계급차별과 경제적 빈곤도 나오고. <플란다스의 개>는 주인공 소년 네로가 이웃의 냉대 속에서 굶어 죽습니다. 한국의 <몽실언니>. 주인공 몽실이가 왜 다리 장애를 입었는지 다들 아실 겁니다. 이처럼 명작 반열에 오른 동화와 청소년소설은 우리가 착각하는 것처럼, 아름답고 예쁜 이야기로 치장돼 있지 않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 어느 강연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누군가 <몽실 언니>처럼 가엾고 슬픈 아이 이야기 말고 밝고 희망찬 동화를 많이 써 주셨으면 좋겠다고 . 권선생님이 그러셨습니다. "슬픔을 모르는 아이는 좋은 어른으로 자라기 힘들다, 다른 이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아이는 좋은 어른으로 자랄 수 없다, 세상 모든 아이들이 밝고 환하게 살고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세상에는 지금도 눈물 흘리고 고통받는 아이들이 너무도 많다, 어두운 모습을 감추고 보여 주고 싶은 모습만 드러내려 하는 것은 어른의 잘못된 생각이다, 아이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뭔가 부족하고 상처 많은 영혼이 주변의 아픔에 더 공감할 수 있고,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낙동강변 2인조 사건의 재심과 무죄판결을 이끌어낼 겁니다. ‘공감의 근거와 이유’를 사례로 입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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