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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문학페스티벌, 지속 가능하려면

[완도 시론]박두규 / 전라남도 청소년미래재단 원장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7.11.17 15:36
  • 수정 2017.11.17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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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규 / 전라남도청소년미래재단 원장

무르익은 가을에 문학과 예술의 잔치가 많이 펼쳐지면서 우리들의 감수성을 일깨워주었다. 그 중에서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추진한 제1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이 규모가 다르고 새로웠다.

아시아문학페스티벌은 11월 1~4일 광주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1986년 아프리카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월레 소잉카를 비롯한 문학의 거장들이 초청되었고 우리나라 유명 문인들도 참가하여 강연, 낭독, 지역 탐방 등의 행사를 이어갔다. 마지막 4일은 ‘아시아의 아침’이라는 주제의 본 행사에서 도종환 문화관광부장관이 축시로 가슴을 울렸고, 아시아문학상을 몽골 시인 담딘수렌 우리앙카이에게 수여했다.

“나는 우주 속에서 혼자도 여럿도 아니다.   나는 하늘 아래 영원하지도 일시적이지도 않다.  살아 있는 것도 죽어 있는 것도 모두 썩어가는 이 세상 속에 짧은 운명의 한 순간이 되기에, 나는 운이 좋지도, 운이 안 좋지도 않다.”

우리앙카이의 시 ‘증언’의 마지막 연이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한국의 경제 성장 원인이 문화인을 대접하는 데 있는 것 같다 하며, 오늘의 인류가 잘못 살아가고 있는 원인은 신을 섬기거나 사랑하지 않는 것과 시인·작가의 말을 듣지 않는 것 두 가지라고 했다.

이렇게 처음으로 ‘아시아문학’이라는 큰 제목을 내걸고 치러낸 행사를 보면서 아쉬운 점들이 보였다. 이를 보완하여야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몇 자 적는다.

우선 축제는 왜 하며, 누구랑 할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이번의 행사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추진하는 행사로서만 자리매김 된 한계였다. 여러 나라와 우리나라에서 초청한 문인 30여 명만을 위한 행사는 분명 아니었을 텐데. 우리 지역 문인이나 전국적인 문인들이 참여할 기회도 없었고, 시민들이 함께 하며 아시아 또는 세계 문학을 느낄 내용도 모자랐다. 문인과 문학을 애호하는 시민들이 이곳저곳에서 적절하게 어울리며 작품을 감상하는 기회가 만들어져야 하겠다.

다음으로 아시아문학이라는 행사명도 되새겨보며 주제를 명확하게 내걸어야 한다. 필자는 아시아 출신들만 초청하는 행사인 줄 알았는데, 아프리카 유럽 미국 작가들까지 초청되어 있었다. 아마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라는 이름을 따라 행사명이 붙여졌다면 너무 가벼운 결정이다. 문학의 범주를 작가가 속한 나라별로는 구분해도 대륙별로 구분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 고은 조직위원장이 인사말에서 강조한 5월 광주민주항쟁의 최후 근거지였던 도청과 윤상원을 기억한다면, 이른바 광주정신인 ‘대동정신’ ‘절대공동체’를 담은 ‘아시아시민공동체문학’ 페스티벌이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그리고 아시아문학상을 몽골의 대표 시인 우랑카이를 선정하여 특이한 작품을 대할 수 있었지만, 상금이 2천만 원이라는 건 초라한 느낌이었다. 수상자 선정의 절차에 시민 추천의 길도 열어주고 상금도 국가 행사 수준으로 높이길 바란다. 또한 급하게 목포, 순천, 담양, 장흥 등에서 페스티벌 사전 행사를 추진하면서 비용 지출이 늦어지는 불편이 없도록 지역 문인과 시민이 참여할 넉넉한 준비 기간이 주어져야 하겠다.

이번 가을에 첫 출발한 아시아문학페스티벌이 제2회에는 더욱 알차게 추진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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