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영화 김광석'과 고발

[완도 시론]박준영 / 변호사

  • 박주성 기자 pressmania@naver.com
  • 입력 2017.10.24 23:03
  • 수정 2017.10.24 23:11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준영 / 변호사

1955년 5월 11일,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한 여성이 목이 졸려 살해당했습니다. 트럭 운전기사인 한국인 이득현 씨는 그날 새벽 이 운송점 앞을 지났고 살해 장소에서 이 씨의 구두자국 같은 것이 발견됐다는 이유로 이 씨와 그의 조수 스즈끼 씨가 범인으로 몰려 재판을 받았습니다.

이 씨를 변호했던 마사끼 변호사는 목 졸려 살해된 시신의 반항 흔적, 가옥의 구조, 시신의 온도, 살해 후 옮겨진 흔적, 살해된 여성의 예금증서를 이 씨가 훔친 것으로 조사됐지만 살해된 여성의 동생 집에서 발견되었다는 점 등을 주장하며 치열한 법정투쟁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이 씨는 강도살인죄로 무기징역, 스즈끼씨는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런데 마사끼 변호사는 판결이 확정된 후 ‘고발’이라는 책을 통해 이 사건의 진범은 살해된 여성의 오빠 부부와 동생임이 틀림없다며 실명을 언급하여 폭로하였습니다. 결국 명예훼손으로 고소되었고, 피고인으로 법정에 섭니다. 일본이 패망한 지 얼마 안 된 때였고,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범인이 틀림없다는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많았다는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사끼 변호사는 그런 시대에 한국인 이 씨를, 아니, 무고한 사람을 변호하다가 스스로 피고인이 된 것이었습니다.

마사끼 변호사는 자신이 피고인인 법정에 자신이 진범으로 지목한 사람을 증인으로 불러 직접 신문합니다. 현장 약도까지 보여주며 집요하게 추궁하는 장면에서는 누가 피고인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고 합니다. 마사끼 변호사는 이 씨 사건 변호했기 때문에 기록을 갖고 있었고, 그 기록에 근거하여 문제제기를 했던 겁니다. 기록이 무기였고, 방패였습니다. 저도 재심사건을 진행하면서 진범이 따로 있다는 주장을 하였고, 진범을 풀어준 검사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였습니다. 제 자신감의 근거는 기록이었습니다.

이상호 기자가 영화 ‘김광석’을 통해 김광석 사망사건의 문제점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저도 영화를 봤습니다. 김광석 씨 부인의 행태를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자살사건이 아니라면 그 진실이 밝혀졌으면 좋겠고, 이런 의혹제기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억울한 죽음을 줄이는 제도개선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 공감했습니다. 하지만 영화개봉이후 여러 기사와 이에 대한 반응을 접하면서 아쉬운 점과 우려되는 지점도 있었습니다.

제 생각을 말씀드리기 전에 먼저 사건을 바라보는 언론인 이상호 기자의 관점과 법조인의 관점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밝혀둡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문제를 접근함에 있어 다소 보수적인 법조인 중 한 사람입니다. 서해순 씨에 대한 의혹, 영화 속에서 나오는 매우 비상식적인 행동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김광석 씨와 서연 양의 죽음에 범죄가 개입되어 있다면, 가장 큰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서해순 씨라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이 서해순 씨에 대한 비난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있고, 법적 절차의 불신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 우리가 함께 고민해보자는 취지로 제 생각을 말씀드립니다. 

아쉬운 점은 기록이 없는 상황에서 문제제기의 한계입니다. 영화 속에 배상훈 프로파일러가 전문 의견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전문가 의견의 전제 사실 그리고 그 근거가 정확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를 뒷받침할 자료가 나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김광석 씨를 부검하였던 법의관이 ‘호사가들의 의혹 확대, 혹세무민 수준’이라는 격양된 표현으로 심경을 밝혔습니다. 부검의가 고려하였던 팩트 중 우리가 모르는 사실 그리고 오해하는 사실이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부검의가 이를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는 것에 의문을 갖는 분도 계시는 것 같은데요. 부검의는 자신이 몸담았던 기관인 국과수, 부검의견 등을 분석하고 판단한 수사주체인 경찰과 검찰이 나서야 할 문제로 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퇴직한 공무원이 민감한 개인정보를 공개하는 것에 부담도 있을 겁니다. 부검의의 이런 태도를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변사사건 수사에 관여하는 경찰, 국과수, 검찰 등 관계기관의 분석과 수사가 모조리 허술할 수 있는가라는 점인데, 이들 기관의 책임을 논할만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더하면 더욱 우려스럽기까지 합니다. 의혹을 이야기하며 이들 기관의 책임을 추정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이 크다고는 하지만, 근거 없는 불신의 확대로 인한 피해는 결국 우리가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들 기관을 믿고 의지해야 할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늘 벌어지고 있습니다. 

서해순 씨의 사업, 돈, 남자 문제가 거론되는 것 같은데요. 이런 문제가 김광석 씨와 서연 양의 죽음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근거로 사실을 추정하며 이런 의혹을 당사자에게 해명하라고 하는 것도 문제 있습니다. 서해순 씨 입장에서는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을만한 민감한 개인사를 감추고 싶을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범죄 혐의에 대한 합리적이고 충분한 근거가 없이 이 개인사를 범죄혐의와 연관 지어가며 ‘공개해야 의혹이 풀린다’며 압박하는 것도 무리라는 겁니다. 누구나 부끄러워서 또는 비난이 두려워서 밝히고 싶지 않은 개인사가 있는 것입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피의자가 자신의 무죄를 적극적으로 입증할 필요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유죄 입증은 검사가 해야 된다는 것이지요. 무죄 추정은 범죄혐의를 밝히는 과정에서의 피의자 인권도 고려한 법원칙입니다. 서해순 씨가 감추고 있는 비난받아 마땅한 개인사를 옹호하는 게 아닙니다. 비난받아 마땅한 개인사와 살인혐의와의 관련성 입증은 객관적이고 명확해야 합니다.

경찰청장이 김광석 사망사건은 공소시효가 완성되어 수사가 어렵다고 입장을 밝혔는데, 이에 대하여도 비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되기 전 사건이라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도 한정된 사법자원의 합리적 배분의 관점에서 수긍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재심전문변호사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무조건적인 재심의 확대를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일이 많아지고 집중해야 할 사건이 생기면 소외받는 사건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의심은 쉽지만 증명은 어려운 법입니다. 또 시간이 지날수록 실체를 밝히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게다가 김광석 씨 살인사건은 수사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문제를 제기한 기자는 조용해지면 구석에서 매를 맞습니다. 조용해지지 않도록 기자는 발버둥을 치죠’ 이상호 기자가 페이스북에 언급한 심경입니다. 삼성 X파일 사건에서 큰 불이익을 입은 경험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그런데요. 조용해졌지만, 위에서 언급한  여러 한계 때문에 추가로 드러나는 사실이 없어 서해순의 혐의가 없다고 판단될 경우, 서해순에게 의구심을 가졌던 사람들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의구심을 계속 유지하며 비난을 해야 하는 건지... 기록 없이 근거가 부족한 상태로 의심을 이야기하는 것의 결론이 이렇게 허무할 수 있다는 겁니다. 다행히 서연 양 사망관련 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함부로 추정하지 말고 한발 물러서서 상황을 지켜보는 것도 필요해 보입니다. 제대로 된 결과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를 향해 나아가는 절차 또한 제대로 된 것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