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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장보고루트 2500km를 달리다

[중국 장보고유적 답사기]유영인 / 완도군청 문화체육과 영상미디어 담당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7.09.30 12:56
  • 수정 2017.09.30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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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바로본 중국 장보고 문화유산.

편집자 주> 이 글은 지난 8월 14일부터 8일간 중국 동부해안에 분포된 장보고대사의 유적지 및 재당(在唐)신라인의 흔적을 찾아 나선 장보고글로벌재단 중국탐사단의 일원으로 참가한 유영인씨의 답사기로 연재 글입니다. 구성이나 내용은 본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8월 14일 (월)
비가 오는 가운데 대장정이 시작되다.
이른 아침 호텔에서 눈을 뜨고 밖을 내다본다......별이 초롱초롱하다. 

하늘이 맑은 것을 보니 우리의 일정에 서기(瑞氣)를 비추는 것 같았다. 콜벤을 불러 일행과 함께 공항으로 향했다. 인천대교를 지나며 시원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번 여정은 일정이 매우 타이트하고 길어 고생이 되리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러나 마음먹고 나선 길이니 끝까지 사고 없이 마무리를 잘 하자는 생각에 잠길 무렵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하니 몇몇의 답사단이 모여 있을 뿐이었다. 조금 기다리니 이번 탐사단의 단장이신 김성훈 장보고글로벌재단 이사장이자 전 농림부장관이 오셨다. 탐사단은 인사를 나누고 중국의 동방항공을 이용하여 07:45분 연태(烟台 옌타이))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이륙과 동시 서해안의 크고 작은 섬을 바라보며 비행이 시작됐다. 발해만에 접어드니 먹구름이 드리워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에이 한국은 그렇게 날씨가 좋더니만....' 속으로 중얼거리며 부슬비가 내리는 옌타이 국제공항에 무사히 착륙하였다. 현지가이드와 인사를 하고 곧 일주일간 우리를 실어 나를 관광버스에 승차하여 등주성(登州城)의 봉래각(蓬萊閣)으로 향했다.
 

유산포 기념비 앞에서.


산동성(山東省 산둥성)에는 논(沓)이 하나도 없다, 모두가 구릉지대(丘陵地帶)다. 전통적인 산동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한톨의 쌀도 먹지 않는다고 한다. 밀과 옥수수로 만든 빵만 먹고산다고 한다. 공항에서 봉래각으로 가는 한시간 내내 도로 양옆으로 복숭아밭이 펼쳐져 있다. 중국 10여번 이상을 다녔어도 정말 넓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등주성에 도착하니 빗줄기가 더욱 세차진다. 등주성은 발해만과 서해안이 만나는 반도의 끝에 위치한다. 중국도 휴가철을 맞아 엄청난 내륙 사람들이 바다를 보러 왔다, 거의 떠밀리다 시피 해 봉래각에 오르니 발해만(渤海灣 보하이만)과 서해가 맞닿는 황토 빛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곳 등주는 일찍이 신라인들이 신라관(新羅館)을 설치하고 무역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고려의 충신 정몽주(鄭夢周)가 다녀간 곳이다.

또한 반도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신석기 문화를 찬란히 꽃 피웠고, 후대에는 이곳을 중심으로 많은 무역 활동이 펼쳐져 중국의 각종 도자기가 유통되었던 무역항이다. 적으로부터 등주를 지키기 위해 봉래성과 수성(水城)을 만들어 무역기지를 보호하였다. 그러나 오랜 세월의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수성은 갯벌의 퇴적으로 매립되었으며 그 자리에는 봉래고선박물관(蓬萊古船博物館)이 들어서 있다.

박물관에는 13~14세기 원나라 시대 전선(戰船)과 명대 선박 2척이 발굴되어 선저(船底), 선수(船首), 돛, 기타 선박에서 사용되었던 석제품(石製品)등이 발굴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 규모가 상당하다. 시간이 없고 통역사가 없어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일단 카메라 셔터를 쉬지 않고 눌러 댔다. 그러나 실내가 너무 어두워 카메라가 한계를 드러냈다.
 

등주 신라관의 모습.


점심을 먹기 위해 버스를 타고 식당으로 향했다. 맥주와 고량주(高粱酒)를 한잔씩 하니 몸이 더워졌다. 늦은 점심을 먹고 오후 일정인 적산법화원으로 내 달렸다. 피곤하였던지 금새 눈꺼풀이 저절로 감겨져 왔다.

봉래각에서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까지는 약 3시간이 걸렸다, 가는 도중은 모두가 옥수수밭이거나 복숭아 과수원이었다. 도대체 이걸 누가 다먹는지???
법화원의 입구에 도착하니 미리 연락 된 법화원 관계자가 나와 있었다, 그러나 너무 늦어 법화원은 다음날 돌아보기로 하고 티 타임 후 그날의 일과를 마쳤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적산시내를 지나 석도만(石島灣 스다오)의 벌판에 지어진 적산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적산호텔은 법화원을 개발한 적산그룹이 투자하여 지은 호텔로 외변 전체가 적산에서 생산된 붉은 돌(赤山 紅)로 감 쌓여 있다. 외관상으로는 커다란 호텔이었으나 주변 시설이 하나도 없어 저녁을 먹은 우리는 그저 천장만 쳐다보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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