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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가을이, 내게로 왔다

[가을특집]가을, 완도 그리고...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17.08.25 21:29
  • 수정 2017.08.25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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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고은 시인은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라고 했다.
가장 아름다운 하늘이 펼쳐지는 가을날.
아직은 노염이 기승을 부리는 날씨지만 군민이 추천하는 완도의 가을을 소개한다.

정현종 시인이 그랬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그렇다. 누군가 나의 방문객이 된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지금 이 순간에 나와 마주한다는 것, 얼마나 짜릿하고 설레는 순간인가!
비록 남루하고 용렬하기 그지없는 나란 존재. 세상에 내놓고 자랑할 만한게 아무 것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누군가와 조우한다는 건 범상한 일이 아니다.
왜 그런가?
출근길, 군외면에서 완도읍으로 들어오는 옛도로를 굽이굽이 돌아오다가 만난 한 장면(맨 위 사진).
 


나는 너의 신비로운 존재의 물가에서, 태초의 신이 너를 보았듯 새로운 눈망울로 너를 본다. 시공간의 허구를 망각한 채,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구차스러운 욕망이나 이유를 떨쳐버리고, 오로지 이 우주의 공간 속에서 하나의 별과 또 하나의 별이 우연히 만나는 것처럼, 인연의 신비로움으로. 그 시공간에 비춰진 낯설고 아름다운 너라는 존재를 나는 그렇게 만난다.
너를 만난 이 한순간은 젊은이들의 뜨거운 사랑과 말할 수 없는 행복, 쓰라린 이별의 아픔까지 더해 이 우주를 뒤덮고도 남을 그리움의 부피와 질량까지.
사랑스러운 한 소녀의 꿈을 안고, 그 침범할 수 없는 존재의 바닷가에서 최초로 낯설고 신비스러운 너를 그렇게 발견했다.
크로노스가 아닌 카이로스로 바뀌는 그 순간에, 나는 너의 바다 속으로 몸을 던지고 나는 너의 존재로 말미암아 너의 마지막 바다를 바라 볼 것이다.
어쩌면, 이순간은 신이 너를 보듯이 너를 보는 최초의 사람으로서, 절대의 시공간이 모두 사라지는, 그래서 사랑도 없이, 그리하여 나도 너도 없는 이순간이기를...
 


형이상학적인 이 아침은 너를 만남으로써 거닐게 됐다.
네가 빚어낸 지금 이순간이란, 결코 개념이나 논리의 영역으로 끌어들일 수 없는 어떤 것이면서, 지극히 시적이면서 몽환적 신비로 가득찬, 초월적인 그 무엇이기도 했다.
그건, 잠시나마 신이 영원이란 속살을 만져볼 수 있도록 살짝 열어 젖혀준 '순간'의 멈춤 같은 것이기도 했다.
지금 이순간에 맛본 이 불가사의하고 아름다운 경험이 오늘을 아님, 내일, 또는 남은 일생에 있어 비루해질 날, 구원하는 시가 될 수도 있겠다.
본질의 존재는 실존을 향하고 실존의 세상에선 어떤 금지도 규약도 없다.
그걸 하는 것은, 적어도 시도해 보는 건 오로지 나란 존재일 뿐.
나란 존재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한 계속 된 노력. 그 노력을 위한 모든 시도는 쓸데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나의 기쁨이란 너란 해답이 아닌 너를 풀어가는 그 수수께끼에 있으니까.
내 존재의 집이란 풀어낼 수 없는 그 수수께끼를 향하는 순간, 어느 지점에 이르러 맛볼 수 있는 황홀의 극점에 거주함으로...
그곳은 실로 어마어마하게 경이로운 방으로써 나의 방문객이 된 너는 그렇게 어마무시한 일이 된다는 것.
 


내가 눈을 감았을 때 일어난 일을 설명할 길이 없다. 누군가를 떠올릴 때 마주하는 순간이 왜, 저토록 신비로운지를 말할 수 없다.
내가 보고 떠올리는 것들은 분명, 내 속에 삶을 향한 창을 여는 것. 저런 장면을 만난다는 건 내가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소리이고 내 영혼이 누군가에게 달려갈 때 저런 기분일 것이며 이 순간, 나는 무한한 사랑의 충만으로 자유롭다는 의미가 아닐까!
가을이 가을이, 내게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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