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돌과 바람과 그리고 나의 밤바다

[여름 특집] 쉼, 이곳 어때요? 4. 돌담길이 아름다운 여서도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7.08.01 10:28
  • 수정 2017.08.01 10:43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산도 여서도 등대


저 멀리 등대불빛만이 희미하게 깜박일뿐 밤바다는 비교적 잔잔했다.
보름달의 크기는 내가 본 것 중에 최고로 웅대했고, 분화구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 월면은 진노랑의 매혹적인 빛으로 밤의 허공을 장악했다. 달빛의 속삭임은 어둡고도 신비한 어떤 교향악처럼 밤바다의 물결 위로 내려앉았다.
밤바다에 꿈결 같은 붉은 비단길 길이 길게 열렸다.
어떤 바람이 밟고 갈 길이란 말인가?
어떤 음악의 항로란 말인가?
저토록 신비로운 비단길 길이란...
나는 바닷가의 갯바위 위에 홀로 앉아 달빛에 흠뻑 젖은 밤바다를 바라보며,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베빈다의 '파두'란 음악을 들었고, 아그네스 발챠의 '기차는 8시에 떠나네'를 들었고, 요제프 코브존의 '백학'을 들었다.
비탄의 정조로 물든 음악이 달과 바다의 풍경 속으로 번져갔고, 그 풍경은 음악 속에서 아스라히 흘러가며 부드러운 곡선으로 굽이쳐 흘렀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이 음악의 출항과 귀항을 도왔다.
이윽고 나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초월적 공간과 시간 속으로 들어선듯 했다.
어떠한 형용사와 부사로도 접근할 수 없는 불가사의하게 신비롭고 아름다운 세계가 펼쳐진 것이었다.
달과 밤바다의 이중주!
그 몽환의 아다지오 앞에서 나는 어떤 황홀의 극점에 도달했고, 마침내 울고 싶어졌다.
나는 평생 잊지 못할거 같은 시공간을 만나고 왔다. 실물의 풍경에 비하면 사진 속의 풍경은 너무나도 초라해서 참으로 안타깝다.
 

청산도 여서도 풍경.


돌과 바람과 그리고 나의 밤바다. 여서도.
이곳 여서도는 고려시대에 제주도 근해에서 대지진이 7일간 계속되더니 해상에 거대한 산이 솟아오르자, 고려의 ‘여(麗)’자와 상서로이 생겨난 섬이라는 뜻의‘서(瑞)’자를 합쳐 부르게 된 지명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태랑도(太郎島)라고 불렸다고.
아름답고 상서롭다’는 뜻의 여서도는 아직까지도 때 묻지 않은 천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섬이다. 특히 30~40m 깊이의 바닷속이 훤히 보일만큼 맑아서 “여서도로 시집가던 새색시의 앞섶이 풀어지며 옷고름이 바닷물에 빠져 황급히 들어 보았더니 옥색으로 물들어 있더라”라는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물이 깨끗한 섬으로 알려져 있다.
어딜 갔던 뭘 봤던간에 사람이라면 맘이 편해야 한다. 그래야 보이고 느끼고 행복하다. 아름다움은 내 마음을 평온케 한다.
 

청산도 여서도 돌담길. 사진출처)사단법인 섬연구소


여서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앞서도 언급한 나만의 밤바다를 가져 보는 것. 두번째는 너무나 아기자기한 돌담같다.
이곳 돌담이 유지 될 수 있엇던 건, 원래는 구불구불한 돌담길 폭이 1∼1.5m에 불과해 차량이 다니기는커녕 언제 무너질지 몰라 불안하다며 주민들은 마을 안길 정비를 원했다고. 그리해 도서종합 계발계획에 반영되면서 국비 70% 등 4억원을 투입하기로 한 도로 확장, 포장 사업도 시작됐는데, 전체 돌담 1.5㎞ 가운데 220m가 공사 구간에 포함되면서 고민이 생겼다고.
문화적 가치가 큰 돌담.
결국 주민들은 일부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돌담을 보존하기로 통 큰 결단을 했다.
 

청산도 여서도 마을 전경


외로운 섬이지만, 이러한 섬에 와서 얻어지는 것은 '단순함'이다.
복잡한 지하철을 구별해서 탈 필요가 없고 횡단보도와 신호등에 신경 쓸 필요가 없고 가족사랑 이웃사랑 하는 것을 TV를 통해서 배울 필요가 없고 동백꽃 진달래꽃을 꽃집에 가서 살 필요가 없다.
나서면 꽃밭이요 문을 열면 이웃 정이요 가고 싶은 데로 가면 길이다. 생선가게에 가서 생선을 엎었다 잦혔다 할 필요도 없다.
낚싯대를 담가두면 고기가 문다.
이 단순함이 바로 느림의 미학이다.
예수도 걸어다녔고 원효도 걸어다녔고 김삿갓도 걸어다녔다.
이렇게 말하면, '그때야 차가 없으니까 걸었지'할 거다.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빠르게만 간다는 건, 오로지 결승선만을 보고 달려가는 경주마에 불과할 뿐이다. 진정한 나를 찾는 건, 끝으로 가는 것이다. 세상의 아름다움은 모두 끝에 있으니까! 그래서 진정 중요한 것은 여행정보가 아니라 철학이다.
가장 행복한 시간이며, 가장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비하면 그에 쏟는 노력은 인터넷 검색어에 여행지 추천 정도 검색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내가 어디를 갈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고찰은 비교할 것도 없이 필요하다.
내가 어디를 갈 것인가는 자신의 세계관이 반영된 나에 대한 물음이다.
그 곳에는 소외되고 버려진 잊혀진 아름다움이 있다. 그 곳에는 오랜 세월을 두고 그대를 기다리고 있는 낯선 아름다움이 있다
 우리 모두 어디로 떠나자. 다리가 아프면 상상의 오두막집에 들어가 쉬었다가더라도.
나의 끝을 가보는 여행!
이 얼마나 설레는 길인가! 

이영자 / 완도수고 교무행정사

영자 씨는 현재 완도수고 교무행정사로 재직 중이며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초대 완도지회장을 역임했다.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