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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리 구계등은 밤에 가야 제맛이제잉~

[에세이-고향생각]배민서 / 완도 출신. 미국 거주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7.08.01 10:07
  • 수정 2017.08.0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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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가장 고상한 축복은 내 고향이 바로 완도라는 사실이지요. 때때로 동료들과 환자들이 나의 출신에 대해 묻게되면, 나는 한국뿐 아니라 그들이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완도라는 섬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이 늘어집니다.

어린시절에는 전혀 깨닫지 못했던 에메랄드빛 바다와 정겹게 펼쳐진 리아스식 해안선을 가진 섬들, 그리고 리듬을 타며 구르던 몽돌들의 멜로디가 이렇듯 사무치는 그리움이 될 줄이야 누구인들 알았을까요!

조용히 마음을 모아 귀를 기울이면 포구에 쓸려 삐걱이는 추억의 노래가 들려옵니다. 지구를 몇 번이나 돌다가 다시 돌아온 바람, 어쩌면 텍사스 암병동 내 환자의 시린가슴을 온몸으로 쓰다듬던 그 바람이 입맞춤 한 숨결인지도 몰라요.  "촤르르~ 쏴아~" 어떻게 그 파도소리에 영혼이 없다고 할까요? 바람도 마찬가질거예요. 온 세상을 떠돌아 다니며 자연의 리듬으로 장조와 단조의 음계를 달고 하늘로 급히 소용돌이치며 날아 오르다가 고요하게 당신의 볼을 어루만지며 사랑을 속삭이는 바람은 과연 어떤 빛을 지녔을까요?

나는 보이지않는 바람의 빛깔과 파도의 아린 눈물까지도 화폭에 담아보고 싶습니다.
그러한 설레임들이 환희롭게 출렁이던 완도항이었어요. 어둠이 내려와 기름때로 번뜩이던 선착장과 크고작은 고깃배들을 모두 덮으면 그의 음성은 더욱 또렷하게 우리의 여린가슴 속으로 밀려들어 왔었지요.

그곳에서 갓 스물을 넘긴 청춘들이 기타를 치며 나즉히 불렀던 노래들 - 밤배, 긴머리 소녀, 찻잔,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 등은 이제는 흘러간 옛 추억들이 되어버렸네요! 그 때에 우리는 우리를 꿈꾸게 하던 미지의 신비로움들을 모두 파도소리에 담아두었습니다. 속삭임처럼 귓가에 다가와 여운을 남기며 쏴아~ 밀려가는 밤바다와 항구에 묶여 끼르륵거리며 가슴 밑바닥을 끍어대는 그곳의 여름바다가 아직도 나는 몹시도 궁금합니다. 그 때에 함께 노래를 부르며 정처없이 쏘다니던 우리들의 젊은초상화들은 지금 어느 골목, 어느 길목 쯤에 걸려 있는 걸까요?

13년 전 도미한 후에 처음으로 남편과 한국을 방문했을 적에 죽마고우는 말했었죠. "정도리 구계등은 밤에 가야 제 맛이제잉~!" 하며 옛 친구들을 불러모았고 자정 가까운 시각에 깜깜한 방파림 숲을 지나 구계짝지를 향해 어슬렁대며 찾아 갔었지요.

몽돌위에 둘러앉아 밤을 지새우게 만들었던 노랫가락들과 나누었던 정담들 역시 옛 추억들 입니다. 그 밤에 흐르던 교교한 달빛은 얼마나 도탑고 아름답던지! 쉴세없이 밀려갔다 밀려오던 몽돌들의 기막힌 음률과 우리의 노래들은 한 여름밤의 찬란한 오케스트라였습니다.  그날부터 내 영혼은 다채로운 몽돌이라는 악기를 연주하며 출렁대던 푸른물결에 젖었고, 달빛의 온화함에 완전히 물들었나 봅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며 지난 며칠동안 오연준의 '포카혼타스'의 주제곡 '바람의 빛깔'이라는 노래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그 사랑의 음률이 내 입가에서 저절로 멜로디가 되어 흘러 나오네요! 이 '포카혼타스'는 1995년 개봉한 디즈니의 33번째 클래식 영화이고 처음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한 애니메이션이기도 하지요. 아메리카 원주민이었던 포카혼타스가 금광을 찾아 온 영국인 스미스씨에게 자연을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주는 노래...

"그대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요 
달을 보고 우는 늑대 울음 소리는 뭘 말하려는 건지 아나요 그윽한 저 깊은 산 속 숨소리와 바람의 빛깔이 뭔지 아나요 바람의 아름다운 저 빛깔이 ...(중략)...
바람이 보여주는 빛을 볼수있는 바로 그런 눈이 필요한거죠 아름다운 빛의 세상을 함께 본다면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어요"

나도 이렇게 세상을 바라보고 싶지요! 단지 시각적인 눈 만이 아닌 영혼을 느낄수있는 신비로운 가슴과 섬세한 사랑을 담은 눈빛 만으로도 우리는 더 환희로운 세상을 만들어갈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배민서 / 완도출신. 미국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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