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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이제부터 당신은 내색시니까

[힐링 완도]하늘이 윤선도를 기다려 멈추게 한 곳, 보길도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17.07.31 13:33
  • 수정 2017.07.3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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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부용동 연꽃


그 길... 그 가는 길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음~ 그 길을 가는 심정이란...
딱, 이랬어.
“곰보란디? 하하”“천하의 박색도 그런 박색도 읍다드라야! 하하하”
놀림이라 생각했지만, 심히 궁금타!
“엄니, 어떻게 생겨씁디여?”
엄니는 “그냥, 어른들께서 결정한대로 따르거라!”“아! 징짜, 이거 환장하고 팔짝 뛰고 미치긋네”
도저히 싱숭생숭 안되겠다.
‘그래, 까짓껏 가자! 함 봐야지’
 


그 길은 내 색시의 첫 얼굴을 엿보러가는 것 같았다. 마치 구름 위로 떠오르는 듯한 묘한 설렘과 활시위에 재워진 화살이 곧 날아갈 것 같은 묘한 긴장감이 교차하는 길.
세상에 그런 길이 또 있을까?
이 생각 저 생각에 땅거미가 내리기 전, 그 집앞. 초가을 따가운 햇볕에 콩알이 까지 듯 콩당콩당 심장이 널을 뛴다.
담장이 높아 큰 돌 몇 개 옮겨 와 딛고 올라섰다. 담장 너머로 뜰 안은 고즈넉한 것이 어느 산사라.
그때여! “네, 어머니” 
비온 뒤 푸른 하늘이 열리 듯 맑고 탁 트인 창창한 목소리...
엄니의 심부름인 듯 뒤켠 장독대로 드디어 나타났다. 마침내 나타났다. 백설의 눈꽃에 봉숭아 빛으로 한껏 물오른 꽃봉오리! 아~암, 그래야지. 활짝 피었다면 매력이 없거덩. 저렇게 그리움을 한껏 머금은 듯한 꽃봉!
그런데 숨을 들으키기가 힘들다.
심장은 이미 멈춘 듯하다.
왜~에~? 응!
그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잖아...
 

보길도 부용동 연꽃


빛처럼 빠른 화살 하나가 날아들었다.
화살은 눈돌릴 새 없이 단 한순간에 붉은심장을 꿰뚫고 지나가 버렸으니 세상에, 누가 보았을까? 누가 들었을까나? 마법의 화살을 맞았다.
은은허니 새초롬 노란수술이 부끄러운 듯 열리듯 말 듯 촉촉한 물기를 머금고 참으로 사랑스러운 자태지 않는가!
단아한 한송이가 이 우주를 멈춰 세웠다.
섬섬옥수 가녀린 손길, 고운 빗질에 윤기 나는 머리결하며! 하얀 목덜미만 내 보인 채 단정한 매무새는 또 어떻고...
우~왕, 곱다! 고와. 모든 꽃들이 제향기를 거둘 것 같은 우아한 자태 저 눈빛 한 번 봐라. 봐!
푸른 달빛을 갈아 마신 듯한 은파의 물결처럼 일렁이는 그녀의 눈빛. 살결은 또 어떻고? 하얀 목덜미 사이로 비추는 그 살결. 그 부드러운 살결은 몽돌을 쓸고 가는 파도소리 같았다. 물론 몽돌에 부딪히는 첫파도가 아닌 보드라운 실크가 맨들맨들한 몽돌을 한없이 보드랍게 쓸어주고 나가는 파도결처럼 촤르르르!
딱, 지금 밤하늘의 울려 퍼지는 클라리넷의 선율 같지 않네? 아니지, 클라리넷 선율이 연꽃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내 목덜미를 휘감다가 콧끝으로 스며 드는... 머 이 정도!
 

보길도 부용동 연꽃


입술? 말하자면 그게 백미야...
붉게 물든 붉은 노을의 붉음 속 천변만화하는 붉음의 화신처럼 그건, 탱고처럼 짧고 격렬한 그 순간에 늑골사이에서 꿀벌들이 심하게 웅웅거리는 듯한 그런 떨림.
정말, 사랑의 'ㅅ'자도 꺼내지 않았지만곁에 다가서면 마주치는 눈빛과 활짝 핀 미소, 단아하기 그지 없는 태도가 저절로 사랑의 빛으로 흘러나오는 사람.
딱, 운(芸)같지 않네?
중국 역사상 가장 지혜롭다는 그녀.
차를 즐기는 남편에게 궁핍한 살림 때문에 좋은 차를 올리지 못해 늘상 안타까웠던 그녀. 어느 날 연꽃을 보다가 아침이면 활짝 피어나고 저녁이면 꽃이 오므리는 것을 보고 그 연꽃 속에다 작은 비단 주머니에 값싼 찻잎을 조금 싸 연꽃심 위에 살며시 올려 놓은 후, 다음 날 꺼내 정성스레 차를 우려 남편에게 이 세상, 단 하나뿐인 연꽃향이 배인 차를 선사한 운.
그야말로 계향충만(戒香充滿).
가장 아픈 곳에서 제뿌리를 내리고 고난과 시련을 딛고서 꽃대를 피워 올려 그 꽃이 활짝 피어나면 가장 아픈 곳을 말끔히 치유하며 그 향기, 연못을 가득 채운다는...
아, 나는 지금 당장 그녀의 입술에 입맞추련다. 그러자 그녀가 말한다.
“입맞추지 말아요”
“나에게 입맞춘다면...”
“당신은 떠날 수가 없을 테니까!”
난 말했지.
“괜찮아! 이제부터 당신은 내 색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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