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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변촌(無辯村)

[완도 시론]정병호 /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7.06.11 20:52
  • 수정 2017.06.11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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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호 /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올해 변호사시험 합격자가 1600명 나왔다. 변호사시험이 도입된 이래 줄곧 합격자 수를 놓고 변호사협회와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사이에 의견대립이 있어 왔다. 변호사협회는 이미 법률시장에 변호사가 포화상태라고 주장한 반면,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는 합격률이 지나치게 낮게 되면 교육을 통한 법률가 양성이라는 로스쿨 도입취지가 몰각된다고 주장한다. 헌데 올해는 상당히 험악한 분위기까지 연출됐다는 후문이다. 겨우 합의를 했으나, 변호사협회쪽에서는 내년에도 1600명은 넘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적정한 변호사 수가 얼마인가에 대한 분석도 천차만별이다. 1년에 배출되는 변호사 수가 1000명 이하가 적당하다는 견해부터 적어도 4~5,000명은 돼야 한다는 견해까지 있다. 작년 9월 기준으로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된 변호사 중 휴업 변호사를 제외한 변호사는 모두 17,644명이다. 작년 6월 기준 주민등록상 인구는 5161만9천330명이므로, 변호사 1명당 국민 3,000명 가까이 맡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법률 선진국에 비해서는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미국, 영국, 독일은 변호사 1인당 인구가 약 300∼500명밖에 안 된다. 법률시장에 변호사가 이미 포화상태라는 변호사협회의 주장은 기득권 지키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변호사협회에서는 우리와 비슷한 일본을 예로 들면서, 현재의 수준보다 많은 변호사를 배출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보다 인구 대비 사건 수가 현저하게 적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2007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인구 1000명당 발생하는 민사사건 수가 24.8건인 반면, 일본은 4건이다. 사건만을 기준으로 하면 일본보다 6배 많은 변호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우리나라에는 법무사, 세무사, 관세사, 변리사, 공인중개사 등 유사직역이 많다는 주장도 별로 설득력이 없다. 수십만 명이나 되는 공인중개사까지 포함시킴으로써 법률사무 종사자가 상당히 많다는 착시현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적정한 변호사 수는 법률수요자인 국민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 그리고 변호사는 말 그대로 자격일 뿐이다.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 자격증을 줘야 하는 것이다. 과거보다 변호사 수가 늘어 변호사들은 좀 어려워 졌을지 모르나, 국민들은 더 편해진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변호사가 많다고 하지만, 그래도 변호사는 아직 갑이라 할 수 있다. 일전에 서울 용산구민들에게 생활법률을 강의할 기회가 있었다. 수강생 40여명에게 친인척 중에 변호사 있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했더니, 한 사람도 없었다. 변호사 1인당 인구수가 3000명 가까이 되니 그럴 수밖에 없다.

작년 기준으로 특별시와 광역시를 제외한 시·군·구 178개 가운데 무변촌은 58곳으로 33%이고, 전남은 22개 시·군 가운데 50%나 된다. 고향 완도도 안타깝게도 아직 무변촌이다. 완도 출신 변호사는 적지 않지만, 완도에서 사무실을 내고 상주하는 변호사가 한 명도 없다. 그러니 정작 사건이 터지면 허심탄회하게 상담할 변호사를 찾기 어렵다. 전국 평균으로 치면, 인구 5만 정도인 완도에는 17명 내외의 변호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단 한명도 없다. 완도에도 2015년부터 전화나 이메일로 무료 법률상담을 해주는 마을변호사 제도가 도입됐다고 한다. 그러나 완도군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마을변호사’로 검색해 봤더니, 안 나온다. 제대로 운영 되는지 모르겠다.

완도에 변호사가 없는 이유가 뭘까. 사건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다. 대학에서 민법을 전공하는 필자에게 민·형사 불문하고 심심찮게 실력 있는 변호사를 소개해 달라는 연락이 온다. 원래 법학전문대학원을 설치한 이유는 변호사를 많이 배출하여, 법률서비스가 필요한 사회 각 분야에 진출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변호사들이 수도권과 지방대도시만을 선호한다. 지방 소도시에서 활동하면 더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경우에도 그렇다. 변호사란 직업의 공공성을 망각한 탓이다. 필자도 법학교수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무변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와 사회가 나서야 한다. 국가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은 일정 기간 무변촌 개업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만하다. 변호사협회도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한다. 일본의 변호사협회는 이미 10년 전 ‘나고야 선언’을 통해 무변촌 없애기 운동에 앞장섰다. ‘해바라기 기금’을 조성해 무변촌에 개소한 변호사들에게 운영자금과 정착비를 지원함으로써 10여 년이 지난 현재 무변촌은 하나도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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