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슬프도다! 이제 누가 있어 연모하는 님에게 나의 소식을 전할 것인가! 신관 사또가 떠난다는 말에 상심하는 부용, 고민에 고민 끝에 신관 사또에게 김이양 대감을 모시게 해달라고 간청하며 먹을 갈아 한 수를 전하니...
달빛이 비추는 창가엔
저의 한이 어려 있습니다.
임의 그림자인 줄 알고
몇 번이나 속아 넘어 간 줄 모릅니다
창 너머, 임이 오시는
발걸음인지 알게 한
저 개울가의 물소리에도
그 설움이 참 많습니다.
화풀이를 했다면 아마도,
창가는 남아 나질 않았을 게고
개울의 징검다리 절반은 가루가 다 되었을 것을요
내 영혼에 발자국이 달렸다면
임에게 가는 그 길은 어마어마한
구뎅이(지금으로 따지면 싱크홀)가 생겼을 겁니다
부용의 편지를 받은 김 대감은 흔쾌히 콜했을까?
당연지사, 천하의 그 어떤 남자가 어여쁜 미인을 마다하랴!
그렇게 만나게 된 두 사람.
단 한 번, 쳐다 본 것 뿐인데 은하수에 뛰어놀던 아름다운 별빛 하나가 방 안으로 들어 왔다네
방 안으로 들어와 졸졸졸
나만 따라 다닌다네
단 한 번, 스쳤을 뿐인데
밤하늘을 거닐던 유려한 달빛 한줄기가
집 안으로 쏟아졌다네
집 안으로 쏟아져 졸졸졸
나만 따라 다닌다네
저 별빛이 저 달빛이, 방안에만 집안에만 들어 온 줄 알았더니
어느 새, 가슴 속에 살고 있었네
정말이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시담을 주고 받던 부용과 김이양 대감.
헌데 밤이 깊어가면 대감 왈 “이제 그만 네 방으로 가려므나”하는게 아닌가!
처음에야‘역쉬, 역쉬! 우리의 김이양 대감이시구나!’ ‘여인을 지킬 줄 아는 멋진 남자야!’
몇 달간은 대감의 배려가 그리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근데 그게 아니잖아! 사람 맘이란게. 여러 달이 지나자 부용은 이부자리를 펴놓고 물러날 때마다 혹여나 자신을 붙잡지는 않을까 뒤돌아보지만, 그런데 이 냥반! 애틋한 눈빛은 쾡이,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야지 하는 눈빛만이 아닌가! 돌아와 외로이 홀로 남는 그를 생각하면 그 모습은 더욱 애처롭고 자신 또한 빈방에 독야청청하기엔 그 신세 참으로 처량하기에 이를 때 없고!(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