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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가장 아름다운 포옹

[뉴스 후]5·18 때 계엄군 총탄 맞고 사망한 완도수협 김재평 직원 딸 김소형 씨

  • 박주성 기자 pressmania@naver.com
  • 입력 2017.05.29 15:00
  • 수정 2017.05.29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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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이렇게 쏟아지는 별빛을 본지가 얼마만이었던가!
토닥토닥, 너의 눈물은 나와 같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했을까?

지난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완도의 딸 소형 씨와 문재인 대통령 간의 포옹. 그 모습을 그녀의 아버지 또한 분명 보고 있었으리. 완도군청 이주찬 과장의 형님 이주상 씨에 따르면 "소형 시의 아빠인 김재평 씨는 완도수협 직원으로 그날 같이 광주에 올라갔다"고. "터미널서 재평 씨와 헤어진 몇 시간 후 창가로 날아드는 총을 맞고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아버지 김재평 씨는 고금도 출신이고 어머니 고선희 씨는 보길도 중리가 고향으로 5.18 유공자로 노화읍사무소에서 잠시 근무하기도 했다고.

어렸을 때 교사인 외할아버지 밑에서 외갓집 보길도에서 학교를 다녔다고 하는데, 김소형 씨는 현재 나이 37세 미혼으로 조선대 미대를 졸업하고 웨딩플래너로 일하고 있단다. 소형 씨와의 인터뷰는 할 수가 없었다. 방송매체에서 집중 조명 돼, 언론사로부터 인터뷰가 쇄도해 심리적 안정이 필요한 상태라고.

방송을 보고 눈시울이 붉어졌다는 정영래 완도문화원장은 "재평 씨는 수협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로써 너무 선량하고 조합 일처리 또한 똑소리가 나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소형 씨의 아버지 김재평 씨(당시 29세)는 당시 완도 수협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날 오후 11시 11분 기다리던 딸이 태어났다는 전화를 받고 기쁨에 들떠 한밤중인데도 곧바로 광주로 출발했다고. 하지만 광주로 가는 길은 계엄군이 차단하고 있어 차를 얻어탈 수 있으면 타고, 아니면 두 발로 걸어서 광주 근처까지 왔고, 여기서 다시 외곽으로 돌아 시내에 들어갔다. 광주 서구 화정동에 있는 그의 작은아버지 집에서 산모와 아기를 만날 수 있었다. 완도를 떠난 지 이틀 만이었다.

21일 오후 해질녘이 되자 계엄군의 총기 난사가 시작됐다.
갓난아기는 울음을 터뜨렸고, 아버지는 솜이불로 창문을 막으려고 일어섰다. 그 순간 “쩡그렁”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유리창을 뚫고 날아든 총탄이 그를 쓰러뜨렸다.

소형씨가 아버지의 죽음을 처음 안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 ‘광주보상법’이 만들어지면서, 보상 관련 서류를 챙기던 어머니가 그날의 비극을 처음으로 털어놨다. 그때까지는 보길도에서 함께 살던 외할아버지로부터 “아빠가 좋은 일 하시다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은 것이 전부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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