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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 이도재의 증손 이경훈 옹을 뵙고

정영래 / 완도문화원 원장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7.04.29 14:55
  • 수정 2017.04.29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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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래 / 완도문화원 원장

 전라도에 암행어사가 떳다. 어사는 부안지역에 접어들어 날이 어두워졌다. 길을 잡을 수가 없었다. 마침 불빛을 보고 허름한 집을 찾아들었다. 할머니가 나와 그를 안내하고 어사는 토방구석에 잠자리를 청하는데, 그때 밖에서 들려오는 사람의 목소리. “어머니 끼니는 어째소?”  “응 덕성이 왔구나.” “내 끼니걱정은 말아라, 건넛방에 어느 젊은이가 자고갈 수 없냐고 해서 모시고 있는데 저녁을 드리지 못해서........”“우선 이것이나 드시면서 이야기 하십시오.”
어머니는 “이런 귀한 음식을 나 혼자 먹을 수 있겠느냐. 건넛방 손님이 먼 길을 오신 것 같은데 시장하실 것 같다. 그 분에게 드려라”
잠시 실강이 끝에 아들은 어사 방으로 가지고 들어가 “초면입니다. 저는 최덕성이라 합니다. 밤늦게 찾아주시었는데 대접할 것이 없습니다.” 하면서 음식을 풀어놓는데 아주 귀한 잔치 음식이었다.
사연을 들어본즉 이 젊은이는 부유한 가정의 장손으로 이웃부자 김진사의 딸과 약혼까지 하였다.
그러나 부친이 돌아가시고 3년상을 치르는 과정에 가세가 갑작이 기우려져 규수 댁 김진사는 일방적으로 파혼을 하였으며, 최덕성은 그 집에서 머슴을 살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내일이 그 규수가 시집을 가는 날이라고 하여 장만한 음식이 있기에 어머님에게 드리고자 가져 왔다 한다. 기맥힌 이야기로구나 어떻게 풀 수 없을까? 음식은 제쳐두고 지필묵을 펴고 편지를 한통 만들어 주면서 “지금 빨리 부안 동헌에 가서 사또에게 이 편지를 전해라.” 젊은이는 밤길을 더듬어 이튿날, 아침 일찍 문이 열림과 동시 편지를 사또에게 전할 수 있었다.
마패가 찍힌 편지를 본 사또는 혼비백산. 내용은! "젊은이에게 신랑행색을 갖추고 이바지음식을 장만하여 당장에 이웃 마을로 오기 바란다.  어사 알림."
혼비백산한 사또는 젊은이에게 물어보고 음식을 장만하여 말 한필에 젊은이를 태우고 장가행렬에 사또가 동행하였으니 이것은 부안고을에 볼만한 행렬이었다. 기다리고 있던 어사는 사또와 같이 김진사를  만나서 오늘행할 결혼식은 파하고 옛날에 약혼했던 덕성이하고 결혼을 하도록 설득하여 혼례를 마치게 되었다. 그리고 삼천석의 재산을 사위 명으로 이전 할 것을 확약 받았다. 둘은 자손만대 행복하게 살았다 한다. 그가 바로 완도를 만들어준 암행어사 이도재이다.
이도재는 전라도 경상도 함경도 암행어사를 거치면서 백성들의 고초를 몸으로 경험하였으며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으려 골몰하였다.
완도 고금도에 유배되었을 때도 고금도민들이 세금을 내는 관청이 민세는 강진현에서 군세는 지역 첨사진 만호진에서 그리고 민원처리 관청이 두 군데 세 군데로 나누어져 주민들이 아주 불편해 하였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완도지역의 섬만 모아 군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경기도 광주 선산하에 거주하는 이도재 증손 이경훈 옹이 4월 26일 완도문화원 초청으로 완도를 방문했다.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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