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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낸 상처

[완도 시론]박준영 변호사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7.03.10 11:21
  • 수정 2017.03.10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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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변호사

 지난 3월 2일 저는 kbs 1TV ‘아침마당’에 나갔습니다. 주변에서 아침마당 나가면 전국 세대별로 눈도장 찍는 것이라 말씀하시더군요. 저는 아침마당에서 ‘문제아’였던 학창시절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왔습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학교를 그만뒀고, 서울로, 인천으로 떠돌며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고향 선배들이 일하는 나이트클럽에 찾아가서 ‘새끼 웨이터’ 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분식집에서 배달도 하고, 프레스 공장, 정비 공장에서 막일도 했습니다. 공부로 뭘 어째 볼 생각은 아예 접어 버렸던 시절입니다. 그 생활이 끝난 건 아버지의 간절한 한마디 때문이었습니다.  “제발 고등학교 졸업장만 따라.”

그래서 노화도로 돌아갔습니다. 또래보다 1년 늦게 종합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3학년 때는 취업반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공부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습니다. 3년 동안 무단결석 일수가 100일 가까이 되었습니다. 문제아도 그런 문제아가 없었습니다. 뭘 해야겠단 생각도 안 들고, 집안 사정도 변한 게 없고, 마음 붙일 데가 없었습니다. 거의 날마다 술을 마셨습니다. 선생님이 친구들과 모여 있던 일명 ‘아지트’까지 저를 데리러 오기도 하셨습니다. 자전거로 사람을 다치게 하는 바람에 열흘 동안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소위 ‘비행 청소년’들이 하는 짓은 빼놓지 않고 다했습니다.

그런데, 문제아였던 어린 박준영은 지금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저는 영웅이나, 위인전 속 위인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대단한 사람들, 뭔가 달라 보였던 사람들이 아니라 내 주변 가까운 곳에서 쉽게 볼 수 있었거나, ‘그랬던 사람이 저렇게 변했단 말이야?’ 깜짝 놀라게 하는 반전을 전해 주는 사례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청소년 시절에 저지른 일들을 그대로 공개하는 것은 바로 그런 까닭입니다.

엉망진창 생활기록부를 보여 드리는 것도, 가출을 일삼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는 것도, 아이들이 저를 통해 ‘저런 사람도 했는데,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좀 만만하게 생각해 주면 좋겠다 싶어서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대단한 한 사람이 아니라, 특별할 것 없는 ‘우리들’ 모두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제 지난 이야기를 함으로써 저는 또 나름 상처를 치유받는 중입니다. 말하고 또 말하고, 제 자신을 새롭게 만나고, 상처받은 시간들을 달리 보고 치유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의 어떤 일은 여전히 제 입으로 말하는 게 두렵습니다. 얼마를 더 살아야 말할 수 있을지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용기 있게 상처를 드러냈을 때, 그 상처를 보듬어 주는 사회를 꿈꿉니다. 상처는 끊임없이 쓰고 말함을 통해 재해석되어 치유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도 말하기를 통해 상처를 치유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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