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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을 따라 랑탕 마을의 품안으로 향하다

[기획연재 4]이승창 관장의 '네팔 랑탕' 트레킹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7.02.17 13:23
  • 수정 2017.03.10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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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전 롯지 앞마당에는 대원들의 카고백을 말에 싣기 위해 모아두었다.


트레킹 둘째날. 아침식사와 출발준비를 끝내고 대원들은 하나 둘 롯지 앞마당에 모여든다. 옷차림은 모두 겨울철 복장이다. 낮에는 최고 20도가 넘지만 일교차가 심해 햇빛이 없는 아침과 저녁에는 추위를 느끼게 되며, 고소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몸을 가급적 따뜻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랑탕마을(3,430m)까지 약 천 미터 정도 고도를 높여야 하는데, 이제부터는 고산증세로 생각보다 힘에 벅차 고통을 느낄 수도 있는 구간이다. 아직까지는 고소증세를 느끼지 못했지만, 밤새 방이 너무 건조해서인지 목감기 증세를 느낀다. 출발한지 한 시간쯤 흘렀을까.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하얀 설산이 눈앞에 나타난다. 가끔씩 아름다운 경치가 보이지만 아직은 입맛을 다시게 하는 맛보기 수준이다.

우드랜드 롯지 건물의 벽에 '막걸리.소주 어서오세요'라는 한글 안내문이 쓰여있다.

 
첫 번째 롯지(RIVER SIDE HOTEL/2,769m)에 도착했다. 백두산보다 더 높은 곳에 서있는 것이다. 마중 나온 롯지 주인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랜턴을 전달했다. 전기가 귀한 곳이라 그런지 무척 기뻐한다. 전달한 우리 대원들도 덩달아 뿌듯한 기분이다. 랜턴의 전달을 이후에도 롯지에 들릴 때마다 계속된다.

계곡을 흐르는 물은 충분하니 소수력 발전을 하면 전기 걱정을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여건이 여의치 않은지 개인들이 태양광에 의존해서 전기를 확보하고 있는데 그마저도 조잡하고 소규모여서 제대로 전기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무척 안타까웠다.

롯지 주인에게 한국에서 준비해 간 태양광을 이용한 전기렌턴을 전달하고 있다.


출발한지 두 시간이 지날 무렵 두 번째 롯지에 도착했는데, 건물 벽에 ‘막걸리․소주 어서오세요.’라는 글귀가 쓰여있다. 한국인 트레킹족들이 많이 다녀서일까? 실제로 막걸리 팔고 있어 호기심에 대원이 건네줘서 한 모금을 마셨는데 우리의 막걸리와 엇비슷한 향이 풍기는 술맛이 난다. ‘창(chang)’이란 이름을 가진 이 술은 발효시켜 만들었는데 뿌연 우윳빛 빛깔과 약간은 시큼한 맛이 막걸리와 비슷했다.

해발 3,008m에 위치한 티베탄 롯지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트레킹 기간 내내 식사는 현지 여행사의 키친보이들이 도맡아 한국식으로 식사를 제공했다. 쿡인 ‘부띠’는 대원들의 입맛에 맞는 한국음식을 매끼마다 만들어줬다. 누구에게 한국음식 조리법을 배웠는지 물어보니 한국인 트레킹족을 따라다니면서 어깨 너머로 배웠다고 한다. 눈썰미와 손재주가 보통을 넘는 대단한 솜씨다.

롯지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휴식을 즐기고 있는 대원들.


점심을 먹고나서 쏟아지는 따사로운 햇빛을 쪼이면서 느긋한 휴식시간을 갖는다. 오늘의 목적지인 랑탕마을은 해발 3,330m로서 헬람부의 북쪽 티베트 국경지역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인구 800명 정도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지만 이 지역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중심마을이다. 랑탕 위쪽은 목초지의 천국이고 꽃과 풀이 풍부하여 여름에 버터 제조에 사용되는 조그만 돌로 만든 움막이 군데군데 널려있다. 높고 고립된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은 따망족이다. 이들의 종교적 의식•언어•의복의 전통은 이웃 중산간 지방의 네팔 주민들 보다는 티베트에 더 가깝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목적지인 랑탕마을을 향해 산길을 오르고 있는 대원들


몇 곳의 롯지를 지나고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기울고 땅거미가 스멀스멀 밀려들며 어둠이 드리워질 무렵 랑탕 마을의 숙소에 도착했다. 라마호텔을 출발한지 9시간 만이다. 지진피해지역을 지날 때는 별다른 생각 없이 무심코 지나쳤다. 나중에 들으니 지진은 눈사태를 불러왔고 랑탕 리룽의 만년설은 높고도 높은 절벽 아래로 엄청난 양의 토석을 밀어 내려 순식간에 마을을 흔적도 없이 쓸어버리고 말았다.

고산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자주 쉬면서 컨디션을 조절해야 한다.


이 지역에서 발생한 참사를 단편적으로 듣고 나중에 그 조각을 모아보니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비극이었고, 지진이 남긴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진 피해 당시 랑탕마을에 살고 있던 800여 명의 주민 가운데 사망자는 약 180명이었고, 아직까지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함몰되어 버린 차가운 땅속에 묻혀있는 실종자는 약 70명 정도라고 한다.

하얀 설산이 눈앞에 나타났다.


대원들은 돌멩이가 많이 널려있는 너덜지대를 생각 없이 지나왔는데 발아래 시신이 있을 수도 있었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끔찍한 생각이 들어 소름이 돋기도 했다. 삶과 죽음은 조물주의 영역이라 생각하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진 아픔을 치유하지 못하고 살아남은 자들이 겪고 있을 고통은 형언할 수 없으리라.

지진으로 눈사태가 일어나면서 토석이 밀려내려와서 마을을 쓸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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