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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살아 있는 자의 의무

[에세이]이수화 / 태화수산 대표, 다문화가정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7.02.17 12:55
  • 수정 2017.02.1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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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화 / 태화수산 대표, 다문화가정

 세 아이들을 키우면서 일을 하는 워킹맘으로 요즘같이 일이 바쁠 때는 ‘사는 게 뭘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집안일과 가게 일에 파묻혀 내 꿈과 내가 하고 싶은 일들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진다. 방학 때 가기로 했던 아이들과의 워터파크 약속도 바쁘다는 핑계로 봄방학이 되도록 아직 지키지 못하고 있다. 
대학시절 나의 동기들은 결혼과 가장 거리가 먼 여자로 나를 일번으로 꼽았다.
그런 동기들의 말처럼 나는 대학 졸업과 함께 쉼 없이 일을 해왔다. 내 스스로 역마살이 끼었나 의심을 할 정도로 나는 돌아다녔다. 또 중국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도 다 가보지 못한다는 중국의 유명여행지를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누비고 다녔다.
그러던 내가 한국으로 유학을 왔고 유학과 더불어 결혼을 하고, 더구나 애들이 셋이라는 말에 친구들은 아무도 믿기지 않아했다. 지금 내가 가끔 생각을 해봐도 젊어서의 내 모습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아마도 쉼 없이 돌아다니다가 지쳐서 정착하고 싶었던 나의 본능 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결혼을 시작으로 내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홀로 즐겁게 인생을 즐기면서 누리면서 살려던 꿈은 멀리 멀리 가고, 지금은 오로지 세 아이의 엄마로 남편의 아내로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언젠가 연세 지긋하신 이모님이 나에게 스치듯 해주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여자는 항상 그 자리에 여자가 중심을 잡고 있어야 가정이 바로 선다고 하셨다. 그때는 그냥 귀가로 스쳐가던 말이 요즘에는 사무치게 생각난다.
얼마 전 타계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 (Zigmunt Bauman)은 “희망은 살아 있는 사람의 의무이다”라며 희망을 역설하였다. 물론 여기에서의 희망은 사회학자의 개념으로 사회가 무엇인가 발전 적으로 변한다는 전제하에 희망을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물론 사회학을 떠나 요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말이다.
지금 당장 힘이 들고 어렵다고 피하기만 할 수는 없다. 어둠은 아침이 거둬내고, 희망은 절망을 몰아낸다고 한다.     
절망의 늪 속에서 아무리 허우적거려도 그 깊은 늪 속을 쉬 빠져 나올 수 없다. 하지만 더 나아 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다보면 언젠가는... 언젠가는... 그 희망의 끝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설령 이루워지지 않을 지라도 손해는 없으니까. 
셰익스피어는 말한다. "불행을 치유하는 약, 그것은 희망 이외에는 없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 인생은 무엇일까?
내 꿈은 무엇 이였던가?
나에게 희망이란 무엇인가?  생명이 다 하는 날까지 무언가를 배우고 깨닫고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의 희망이지만 건강도 외모도 찬란한 청춘 시절보다 못하지만 그 때의 나와는 다르게 좋은 쪽으로 변해가는 삶을 추구하는 것,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내 삶의 전부이다.
남편도 자식도 내가 아니기에 바뀌길 바라거나 강요하고 싶지 않고 달라질 수 있는 거라면 그건 내 자신 뿐 이였다.어쭙잖은 이야기지만 내게 더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었다면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었을까?
어제의 내 희망들이 모여 오늘의 나를 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루를 살다보면 분명 어제와 다른 내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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