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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나로 여기는 사랑!

[문학의 향기]풍란화보다 더 매운 향기 '만해 한용운'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17.01.26 07:47
  • 수정 2017.01.26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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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 가신 뒤에 이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쾌락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따금 실컷 우는 것입니다.
우주와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대철학은 눈물의 삼매(三昧)에
입정(入廷)되었습니다.
 
만해 한용운 '고대(苦待/아픈 기다림)'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시기다. 만물은 이 추위에 꼼짝도 못하고 있다. 인간만이 나서서 이 겨울과 싸운다. 하지만 자연은 침묵한다.
그러나 고요한 침묵 가운데 천체적인 운행으로 자연의 진가를 드러낸다. 이게 자연의 운행이고 순리다. 인간은 이를 모르면서 어떻게 인간이 자연의 법리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는 그냥 알아지는 게 아닌 인간 본연의 자세로 침묵안에서 자아를 느껴야 가능하다. 침묵은 그래서 가장 좋은 친구이고 선생님이다. 이를 알지만 대개 이를 모르는 척 하면서 애써서 이를 무시하려는 게 인간만이 지닌 유일한 태도다.
침묵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살아 숨쉰다. 그 침묵이란 무수한 자아적 성찰이라는 준엄한 내적 성찰을 통해야만이 가질 수 있는 가능성으로써, 만해는 '님의 침묵'을 통해 이를 말하고 있다.
목격전수(目擊傳授). 입을 벌려 말하지 않고 눈끼리 마주칠 때 전할 것을 전해 준다는 이 말.
사물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은 눈이 아니라 곧 마음이라는 것.
마음의 빛이란 눈으로 나타날 뿐, 그렇기에 내 마음의 창문인 그 눈을 통해 우리들은 그 사람의 실체를 파악하려는 것.
그래서 최고의 언어라고 하는 것은 그 말이 아니라 그 마음을 보는 것이며, 그 마음을 보기 위해서 침묵(沈默)한다는 것. 만해는 시(詩) 고대(苦待)에서는 그 침묵을 두고 이 우주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대철학은 눈물의 삼매라고 했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나로 여기는 사랑.
바로 예수님의 사랑이며 '도(道)'이며, '인(仁)'이며, '자비(慈悲)'다.
이는 님이 곧 나임을 느끼는 무한한 충만함의 세계, 최고의 경지인 물아일체(物我一體)를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님의 침묵이란 나와 너, 그리고 우리, 우리 이전과 우리 이후를 위한 말없는 행동과 희생, 즉 그러한 침묵이야말로 진리의 끝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봄 물보다 깊으리라
가을 산보다 높으니라
달보다 빛나니라
돌보다 굳으리라
사랑을 묻는 이 있거든
이대로 말하리.

만해 한용운 <사랑>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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