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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동백꽃

[전문가 칼럼]김원자 / 여행칼럼니스트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7.01.19 18:47
  • 수정 2017.01.19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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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자 / 여행칼럼니스트

 광주에 사는 후배가 매달 만나는 친구들 모임을 보길도에서 갖기로 했다고 연락이 왔다. 보길도 동백꽃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무에 피어있는 꽃이 아니라 땅에 피어있는 꽃이라고 한다. 보길도엔 동백 숲이 많으니까 꽃잎도 무더기로 떨어져 있을 거라면서 꼭 그것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떨어진 동백꽃이라면 인근 세연정뿐만 아니라 보길도 여기저기에 지천으로 널려있다. 그것도 새빨간 홑동백 오리지널로.

겨울의 보길도는 섬 전체가 동백의 화원이라 이를 수 있을 정도로 산과 들, 마을길과 시냇가, 해변까지 동백나무들이 그 선홍빛 꽃봉오리를 무수히 피워 낸다. 동백나무들은 대부분 수백 년 된 고목들이며 이 오래된 나무들이 수백 년 동안 바닷바람을 막아 주어 보길도의 집과 사람과 염소들, 논과 밭의 곡식들이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 보길도에서 가장 유명한 동백나무 길은 부황리 세연정에서 시작되어 부용리 돈방골, 차낭골까지 이어져 있는데 이 동백나무들이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는 겨울 한철 동안은 숨이 다 막힐 지경이다.

‘떨어진 동백꽃의 미학’을 일찍이 극찬했던 사람이 또 있었다. 전국의 아름다운 꽃 풍경을 거의 안 가본 곳이 없이 다녔던 그 분이 얘기한 것은 거문도 동백꽃이었다. 거문도 바닷가에 있는 그 동백나무에서는 꽃이 땅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닷물에 직접 떨어진다. 바다에 떨어진 동백꽃은 해류를 따라 흘러가다가 특정한 곳에 이르면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원무를 그리며 맴을 돈다고 한다. 해류가 빚어내는 자연의 모습이 인간의 눈에는 뭔가 상징성을 갖고 연상작용을 하게하는 것이다. 시퍼런 바닷물에 떨어져 흘러가지 못하고 몸이 사그라질 때까지 원무를 그리는 새빨간 동백꽃의 이미지, 그것은 너무도 선명해서 동백꽃은 떨어져야, 그것도 물에 떨어져야 더 아름답다고 언제부턴가 단정하게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보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백은 단연 세연정 앞 연못에 떨어진 동백꽃일 것이다. 비록 붉은 원무를 추진 않지만 세연지 연못의 동백꽃은 몸부림도 치지 않고 고요히 떠 있어 더 처연하게 아름답다. 붉게 피어나 붉게 지는 단심(丹心)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서정주시인의 시로 유명한 선운사 동백꽃은 엄격히 말하면 동백이 아니라 춘백(春栢)이다. 봄에 피어나니 춘백인 것이다. 동백이라 불리워도 겨울, 혹한의 시간을 견디고 꽃피우는 동백이 아니면 그것은 진정한 동백이라 말할 수 없다. 겨울에 꽃피기 위해 나뭇결은 바짝 말랐고, 푸른 잎은 두껍다. 보길도의  동백꽃은 이미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하여 12월이면 만개한다. 만개한 보길도의 동백은 한 번 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해 4월까지 몇 차례 피고 지기를 거듭하며 그 마지막에 피우는 꽃으로 열매를 맺는 것이다.

보길도에 있는 동백꽃은 대부분 붉은 홑꽃이지만 최근 심은 것은 겹동백도 있고 색깔도 다양해졌다. 정자리에 있는 고택은 오래된 집도 볼만하지만 한 계절에 세 가지 색깔의 동백꽃을 같이 볼 수 있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흔치 않게 흰색과 흑색동백이 이 정원에 있는 것이다. 고산의 글에도 나오는 흰 동백, 산다화라 부르기도 하는 하얀 동백꽃의 아름다움은 단심이라기보다는 숭고와 절제미를 보여준다.  

한심하고 또 한심한 뉴스로 어지러운 이 혹한의 시간이 견디기 어렵다면 보길도에 와서 떨어진 동백꽃을 보시라 꼭 권하고 싶다. 자기의 시간을 마치면 미련 없이 툭 던져버리듯 마감하는 동백꽃의 깨끗한 뒷모습, 진정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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