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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이 기룹습니다

[문학의 향기]풍란화보다 더 매운 향기 '만해 한용운'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17.01.19 18:45
  • 수정 2017.01.19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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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을 기루어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기룹다.

당신이 아니더면 포시럽고 매끄럽던
얼굴에 왜 주름살이 접혀요.
당신이 기룹지만 않다면, 언제까지라도
나는 늙지 아니할 테여요.
 
기룹다. 만해는 님의 침묵을 쓰고 나서 하지 않아도 될 사족격인 <군말>을 남겼다.
군말에서 만해는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마치니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느니라.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느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기루어서 이 글을 쓴다.>
기룹다. 참으로 새색시의 얼굴처럼 뽀얗고, 사랑하는 님의 무릎베게를 베고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듯 정겹다. 이‘기룹다’는 말에 대해 어느 국문학자는 ‘그립다’는 말에서 나왔다고 단정했지만 이미 그 정신과 마음에서 초인의 경지인 해탈상태에 이른 만해의 의식 속에서 불후의 명작 <님의 침묵>이 탄생했다고 볼 때, 또 글의 전체적인 내용으로 봐도 기룹다를 단순한 풀이로서 단정지을 순 없을 듯하다.
이 기룹다에는 그리움과 기특함, 안쓰러움, 애씀, 간절함, 절박함, 기다림, 사랑, 희망….  인간의 오욕칠정이 고스란히 스며 있으면서 욕망과 갈망, 희망과 여망, 열망 등 인간이 원하는 모든 게 담겨 있다.
거기에 기룬 것은 다 님이라고 했는데, 그에게 님이란 사랑했던 서여연화뿐만 아니라 나라 잃은 슬픔이 컸으니 내 조국도 님이요. 불성을 가진 수행자였기에 부처님도 님이요,숭고한 삶을 살다 간 예수님과 창조주 하나님까지 포함한 이 우주의 모든 것으로 확장시킬 수 있겠다.
만해는 그 님이라는 한 글자를 통해 서여연화와 내 조국, 부처, 예수, 이 우주와 하나님까지 삼라만상을 모두 하나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고 하여 그 사랑이란 단순히 나만의 일방적인 소유욕이 아닌 사랑이라 말하고 있는데, 이는 내 아이를 사랑하듯 남의 아이 또한 똑깥이 내 아이처럼 아끼고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온전한 사랑과 상통하겠다. 바로 너와 내가 구별이 없는 사랑으로써 나와 네가 하나로 연결 돼 본질을 통해 합일의 실존을 꽃 피워가는 사랑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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