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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윽한 당신 품에 안겼다고 떠나갑니다

[리더스칼럼]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6.12.16 09:47
  • 수정 2016.12.1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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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서 / 완도 출신, 미국 거주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그러나 학위를 앞두고 파이널 테스트까지 모두 끝낸 후, 하고싶은 일들을  시작하려던 아침. 나는 온 몸이 노곤하고 눈꺼플이 무거워 일어나기도 힘들었다. 어지럽고 메스꺼운 증세까지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피곤했던 내 몸이 반란을 시작했나 보다! 창문을 열어 햇살과 바람들을 들어오게 하였다. 싱그러운 바람 한 줄기, 잔잔하게 비추는 햇살 한 줌에 녹아져 넉넉하게 그들과 함께 하기로 하였다. 때로는 달려온 시간들을 거슬러 조용히 음미하며 쉼을 얻어야 할 때가 있었다. 새로운 일들에 매료되기 전에 나는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하얀 도화지마냥 깨끗해지고 싶었다.
완도출신이면서도 상황봉 정상에 올라간 경험은 내 인생에 딱 한번 있었다. 1980년 가을, 교회 청소년부에서 야회예배를 산행으로 결정했을 때 였다. 그 때 완만한 경사로 안전하게 오르기 위해 서부코스인 불목리 쪽에서 올라갔었고 내려올 때는 동부쪽으로 내려왔던 기억이 난다. 깊어가는 가을 산에는 찌르레기 우는 소리와 풀잎들이 바람을 끌어안고 사그락거렸고 멀리서는 뜸북새가 가끔씩 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장난꾸러기 민서는 바위틈새와 계곡을 껑충껑충 뛰면서 자신감 넘치는 산행을 시작했었다. 그런데 두 시간 남짓 오르다 보니 발목에 힘이 빠지고 숨이 차기 시작했다. 앞서가던 남학생이 높은 오르막에서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붉어진 얼굴로 괜찮다고 고개를 저었다. 너무 부끄러워 남학생 손을 차마 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뒤쳐지지 않으려고 조바심을 내어도 나는 겨우겨우 따라가고 있었다.
빨갛게 상기된 얼굴에는 송글송글 땀방울들이 맺히고 가도가도 정상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산 길에서 괜히 왔다는 후회를 하기도 했다. "왜? 사람들은 힘들게 산을 오르는 걸까?"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리고 숨이 차서 헉헉대며 산행을 계속했더니 정신까지 희미하게 몽롱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낙오될 것을 걱정하던 남학생이 내 배낭을 가져갔다. 그리고 다시 손을 내밀어 오르막길에 도움을 주려고 할 즈음에는 부끄러움도 달아나고 그저 살아서 올라 가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다섯시간은 족히 걸었을까? 정상이 보였다. 먼저 올라간 아이들이 그곳에서 손을 흔들며 "야호~"를 외치고 있었다. 마지막 안간 힘을 모아 올라간 상황봉의 정상은 와아...! , 그곳에서 나는 말문을 잃어 버렸다. 아득하게 구비진 산 봉우리들은 형형색색으로 옷을 입었고, 경계를 잃은 바다와 하늘 사이에 하얀구름들이 두둥실 내려다 보였다. 신지도, 약산도, 고금도, 진도, 청산도, 여서도... 더 멀리에는 제주도까지 희미하게 바라다 보였다. "와아... 신비롭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탄성들이 절로 쏟아져 나왔다. 상황봉에서 내려다 보이는 세상은 경이로웠고 이루 말할 수 없을 만치 아름다웠다.
"아... 이래서 사람들은 산을 오르는구나!"
당신 품에 안겼다가 떠나갑니다 ... (중략)...
살아가면서 늙어가면서 삶에 지치면 먼발치로 당신을 바라다보고 그래도 그리우면 당신 찾아가 품에 안겨보지요 그렇게 살다가 영, 당신을 볼 수 없게 되는 날 당신 품에 안겨 당신이 될 수 있겠지요. - 함민복 [산] 중에서 -
내가 살고있는 텍사스에는 산과 언덕이 거의 없다. 몇 시간을 운전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과 넓은 하늘은 텍사스가 지닌 광대한 대륙의 위엄을 드러낸다. 지천명을 넘어선 나에게 있어 또 하나의 '산'은 '나의 꿈' 이기도 하다. 이제는 정상에 올라 선 그 감동만이 아닌 그 환희와 기쁨들을 순간 순간 풍성하게 경험하고 싶기에, 오늘도 나는 아름다운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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