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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 방방곡곡, 완도가 제일이더라

세상을 만드는 손

  • 한정화 기자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6.12.02 13:39
  • 수정 2016.12.02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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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읍 5일장. 장날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멋쟁이 할머니가 있다. 읍사무소에서 인공폭포쪽으로 돌아서는 모퉁이, 22년째 장날마다 나타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병임 씨(사진).

그녀가 장날에 들고 오는 비장의 무기는 호떡.
남편과 함께 삼천리 방방곡곡 장마당을 찾아다니며 호떡을 구워왔다는 그녀. 5년 전에 세상을 떠난 남편은 이제 옆에 없다. 그녀도 큰병을 앓고 2년쯤 쉬었다. 자식들은 아예 그만 두시라고 펄펄 뛰었으나 다시 장을 찾고 있다.

다른 장은 다 접고 완도에만 온다. 더우나 추우나 비바람이 몰아치나 눈보라가 휘날리나 장날이면 그녀는 완도에 온다. 전국 장마당을 다 돌아다녀도 완도처럼 깨끗한 곳이 없더란다. 혼자서는 움직일 도리가 없었으나 돈을 들여 운전기사의 도움을 받으면서까지 다니자 자식들도 손을 들었다. 지금은 둘째 아들이 함께 한다.

올해 72세라니 자식들 말처럼 쉬시지 그러냐는 물음에 “과자값도 벌고 놀러도 댕기고 병원도

다닐라고 그라제.” 한다. 말이 과자값이지 부모 마음이, 어머니 마음이 어디 그런가, 자식에게 다 주고도 손 벌리지 않으려는 마음. 신세 지는 게 아님에도 한없이 미안해하고 또 미안해하는 마음.

지금이야 직업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지만 20여년 전 처음 길거리에 나서 호떡을 굽는 심정은 어땠을까. “챙피해서 고개를 못 들었어. 그래서 모자를 쓰기 시작한 게 지금까지 쓰고 댕겨” 그랬던 모자가 이제 멋쟁이 병임 씨의 필수 소품이 되었다.

마음 속엔 푸르렀던 젊음이 고스란히 담겼겠으나 돌아보니 어느 새 이 나이. 그녀는 몇 번이나 거듭 말한다. “젊을 때 이쁘게 허고 댕겨, 늙으면 표도 안 나.” 하지만 표가 난다. 호떡이 잘 팔리는 것도 다 복 받아서라고 말하는 그녀의, 고단한 세월이었겠으나 고왔을 그녀의 마음이 표정으로 나온다.

남은 걱정은 단 하나 자식 걱정이다. 그저 착하기만 해서 탈이라는 자식들, 모쪼록 건강하고 잘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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