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너의 향기로운 입술의 속삭임이란...

  • 배민서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6.11.24 10:44
  • 수정 2016.11.24 10:46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떻게 너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말도 없고 고지식해 보이는 모습... 멀리서 바라보며 무척 궁금했었지. 머뭇거리던 그 긴 시간들... 너에게로 가야한다고 결심을 하고 다가간 적이 있었지. 밤이 늦도록 진중한 너의 말에 나의 귀와 마음을 열고 열정을 모아 활활 불태우고 싶었는데... 그만, 너에게로 가는 나의 길을 잃어 버리고 말았지.


그 해 가을은 몹시도 춥게 느껴졌어. 아버지는 위암으로 세상을 뜨셨고, 그 누구도 내게 힘이 되지 못했던 상황이었지. 학력고사를 두 달 앞두고 나는 패잔병처럼 다시 완도로 돌아오게 되었어. 그리고 언니가 시작한 포장마차를 도와 돈을 벌기로 한 거야. 우리는 리어커로 만든 포장마차를 끌어다가 제일교회에서 시내쪽으로 난 길목에다 세웠었지. 아침에 일어나 완도의 구시장을 돌면서 재료들을 구입했고 그것들을 다듬어 김밥을 싸고, 오뎅국물도 만들고, 부침거리들을 준비하는데 한 나절을 보내야 만 했어.


솜씨좋은 언니를 그저 거들기만 했지만, 대학입시 막바지 두 달을 남겨둔 나는 처량하기가 그지 없었단다. 번개탄 연기에 눈물을 찔끔거리며 연탄불을 피워 오뎅국물이 끓을 무렵이면 손님들이 들어왔고 꽁꽁 얼은 손으로 장사를 시작했었어. 엉성한 포장 틈새로 마주하던 칼 바람들은 얼마나 시리고 아팠는지 몰라! 횡설수설 술 주정하던 아저씨들까지 보내고 자정쯤에야 장사는 끝났고, 언니랑 나는 무거운 포장마차를 끌고 밀어서 노두목에 있던 집으로 돌아 왔었지.


 학력고사가 이 삼일 남았을 때 언니가 나에게 말했어. "민서야! 원서는 냈응께 시험은 처 보제 그라냐~잉" 서투른 장사에 책은 들여다 보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시험을 보겠다고 나는 터벅터벅 시험장엘 찾아 갔었다. 겨우 턱걸이로 대학에 합격했었고 힘들게 공장과 식당에서 돈을 벌어 대학 등록금을 내었지. 그리고 돈이 부족해 수업교재는 구입하지도 못한 채 강의실에 앉아 있었어. "한 시간 강의료는 얼마나 될까?" 궁금해하며 계산해 본 적이 있었지. 그리고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어.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었던가!"
남편이 가르치던 학생 중에 잊혀지지 않는 아이가 있단다. 그 아이는 선천적으로 학습능력이 느렸고 청력장애로 보청기를 사용하고 있었지. 몇 해전에 아버지까지 잃고, 아이와 엄마는 어려움들을 극복하기위해 다른 애들보다 몇 곱절의 노력을 거듭하고 있었어. 눈물겹게 외우고 또 외워 너덜너덜해진 그 아이가 지니고 있던 책! 손 때가 묻어 반질거리던 그 책들은 이 땅의 가장 숭고한 기도였고 간절한 땀 방울들의 흔적이었다.


끈질긴 성실함으로 마침내 그 아이가 전교 1등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을 때 모두들 의아해 했었지. 그리고 당당하게 주립대학에 전액 장학생으로 들어가게 되었었다.  "이제... , 나는 너를 느낄 수 있어! 너가 내게 어떤 의미가 되는지도 ......"
나이가 너무 많아서 너를 사랑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말하지 마렴! 너를 향하여 한 발, 두 발 다시 걸어가는 내 심장은 말할 수 없는 신비에 터질듯 쿵닥이고 있어! 내겐 아직도 너무 멋진 너! 너가 내게 주는 매력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었어. 너는 나로 하여금 존재의 알에서 깨어나, 비상을 꿈꾸는 날개를 달아 주었지. 너의 그 향기로운 입술의 속삭임을 이제서야 깨달아가고 있는거 같아!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