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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방 시조공부

  • 김원자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6.10.14 14:34
  • 수정 2016.10.15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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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자여행칼럼니스트 / 보길도 비파원 원장

강진에 사는 지인이 화장품원료로 쓸 동백꽃씨앗을 구입한다하여 너무 쉽게 생각했나보다. 우리 집 뜰에도 있고 보길도 세연정안이나 주위에 이맘때쯤 우수수 떨어져 있던 동백 꽃씨를 그냥 줍기만 해도 될 듯싶어 덜컥 약속을 해버렸다. 아직 널려 있지는 않지만 군데군데 떨어져 있는 동백 꽃씨를 줍는 일을 좀 했더니 허리가 아파 못 견디겠다.

카톡방에 자랑삼아 한 광주리나 되는 동백꽃씨앗사진과 허리 아픈 사정을 털어놓았더니 후배가 시조로 화답을 보내왔다.
‘동백꽃 떨어지고 씨앗이 남았구나
기름집 보내어서 상품이 된다하니
틈내어 주워보건만 꺾은허리 태내네’

나는 둘째연 ‘상품이 된다하니’가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팔려고 동백 꽃씨를 줍는다는 게 시인의 마음이 아니라고 ‘센머리 고쳐볼까’로 바꿔달라 했다. 80년대 민중사상의 세례를 받은 후배가 냉큼 답을 보냈다. “노동시 농민시 많은데...박노해가 주체와 대상의 다름을 무척 비난했잖습니까?” 날카로운 후배의 눈에 걸린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내가 고친 게 더 마음에 든다. 문학에서 현실을 직설적으로 반영하는 것보다 비유나 은유가 더 낫다고 보는 것이다.

당초에 시조를 쓰는 카톡방 다른 친구의 권유로 가끔 흥이 나면 우린 시조로 카톡질을 한다. 거칠고 난삽하게 주고받던 대화가 어느 순간 격조 있게 전개되는 게 여간 흥미롭지가 않다. 시조로 대화를 하는 게 그리 어렵지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전통시인 시조는 3434, 3543의 자귀형식에 초장, 중장, 종장 3연이 기본으로 단시조 연시조가 있다는 걸 중고등학교 다닐 때 누구나 다 배웠지 않은가?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시조는 젊은이는 물론이고 나이든 사람들도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주변문학으로 변해있는 것 같다. 보길도 세연정 옆에 살게 되면서 가장 안타까운 게 바로 이 것이었다. 스피커에서는 계속 고산의 시조가락이 흘러나오는데 막상 시조의 내용은 웅얼웅얼 잘 들리지도 않고 관광객들도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고산의 시심은 어디로 사라지고 세연정의 풍광에만 끌려있다.

해남출신 시조시인 윤금초씨는 “시조가 우리문단에서 뚜렷한 위상을 찾지 못하고 있는게 일제의 문화말살기를 거치면서 형식에만 매달리는 고색창연한 장르로 왜곡해 버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34조의 형식에 매달려 있는 것 같지만 거기에 너무 집착해서도 안 되며  할 필요도 없다는 것. 시조(時調)의 시 字가 때 시(時)자 임을 상기해 볼 때 시조야말로 당대의 생활과 삶을 표현하는 매우 적절한 문학의 한 장르라는 것이다.    

시조는 또한 고아한 언어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사의 자연스런 표현에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요즘에 마누라가 아양을 자주떠네
평소에 안하던 말 시조로 써보내네
이것이 뭔일이당가 노망기가 왔구나
며칠 전 친구의 남편이 썼다는 시조한편에 우리는 뱃살을 잡고 웃어 젖혔다. ‘아 문학에서 해학의 맛이란 이런 거구나. 시조가 어려운 것이 전혀 아니구나’하는 것을 새삼 다시 느낀 것이다.

일본이 자신들의 하이쿠를 생활화하듯 우리도 전통문학인 시조를 생활 속에 더 끌어들일 수는 없을까? 적어도 우리시조문학의 비조인 고산의 흔적이 살아있는 보길도에서부터라도 시조의 생활화가 이뤄졌으면 한다.

10월에 여기저기서 많이 열리고 있는 축제가 그 지역의 문화를 반영하는 특색을 지녀야 한다고 볼 때 완도지역의 축제나 보길도에서는 시조축제를 여는 것이 맞다. 문학인들이나 행정당국이 관심을 두어야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