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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이전과 이후

전문가 칼럼

  • 정병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6.10.07 11:00
  • 수정 2016.10.07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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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호 /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에 들어갔다.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이 법을 제정한 후 상당한 유예기간을 두었고, 정부의 지속적인 계도가 있었다. 그러나 막상 시행에 들어가니 김영란 법에 저촉되는지 여부가 애매한 사례가 수도 없이 등장하고 있다. 권익위원회 홈페이지에 질문이 쇄도하고 있으나, 권익위원회조차 명확한 답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가장 애매한 것이 직무관련성이다. 필자가 가장 질문을 많이 받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직무관련성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1회 100만원까지, 1년에 300만원까지 금품 등을 받으면, 원칙적으로 과태료와 징계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직무관련성의 의미가 법원의 판결로 정리되기까지 상당기간 혼선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김영란법은 주로 인허가권을 가지는 공무원을 주된 대상으로 하지만, 교원이나 언론인도 대상에 포함된다. 법 위반으로 신고된 첫 사례는 학교에서 나왔다. 대학 강의를 듣는 학생이 쉬는 시간에 교수에게 캔 커피를 줬다는 것이다. 김영란법을 엄격하게 해석하면 수업을 듣는 학생은 성적이 확정될 때까지 교수에게 어떤 선물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게 국민권익위의 입장이다. 경찰에서는 기명·서면 신고가 아니라 전화 신고라서 조사하지 않는다며 법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을 유보했다.

그러나 필자는 김영란법이 허용하는,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지인들 모임에서 이 사건을 꺼내니, 신고한 학생의 인성 교육이 문제가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교수가 교육을 잘못시킨 것 아니냐는 뜻도 담고 있다. 캔커피 한잔에 학점을 파는 교수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성적 처리 기간이 되면 장학금 수혜, 졸업 등을 이유로 학점을 올려달라고 부탁하는 학생이 더러 있다. 그러나 이런 핑계에 한번 넘어가면, 학점 부여의 공정성이 무너진다는 것을 교수들은 잘 안다. 첫 번째 신고가 교육현장에서 나왔다는 점이 예사롭지 않다. 그만큼 우리 대학생들이 얼마나 학점경쟁에 매달리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김영란법의 가장 큰 허점은 이해충돌방지 조항이 없다는 점이다. 공직자가 지위를 남용해 사익을 추구하는 일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조항으로 선진국에서는 일반화되어 있다. 우리의 경우 입법과정에서 이 조항이 삭제됐는데, 그 이유가 석연치 않다. 이 조항을 조속히 입법화시켜야 한다.

또 김영란법이 직접 청탁한 이해당사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청탁을 들어주지 않은 공직자등을 고발함으로써 법을 악용할 소지가 있다. 두 번째 청탁을 받고도 자진신고를 하지 않은 공직자등은 징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직자등이 청탁을 거부했는데, 다시 청탁을 받으면 반드시 자진신고를 해야 하는 이유다. 애초에 김영란법이 이런 효과를 노린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학교현장에서는 지나치게 비교육적이 아닌가 싶다.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들에게 광범한 예외를 허용하는 것도 문제다. 민원제기가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소정의 절차를 밟아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부정청탁이 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농어촌이 일정한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크게 보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청탁·부패 관행을 끊어,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앞당길 수 있다.

또 김영란법으로 인해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입법로비를 통해 이미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놓은 재벌 등 대기업 입장에서는 성가신 접대관행을 없애는 김영란법이 반가운 측면도 있으나, 로비력이 약한 중소기업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중소기업은 자신들의 처지를 설명하기 위해 공직자들에게 식사대접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김영란법 시행후 공직자들이 아예 몸을 사리니,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할 기회조차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듯하다.

그러나 선진국 공직자들처럼 식사대접을 받지 않더라도 민원을 경청하고, 민원해결을 위해 적극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헌법 제7조 1항은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하지 않는가.

이제부터는 공직자들이 갑질 대신 진정 국민에 봉사하는 자세로 전환해야 한다. 특히 민생 현장에서 민초들과 접촉하는 지방정부의 공직자는 더욱 그래야 한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훗날 우리의 역사가 김영란 이전과 이후로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