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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이 성냥이 탈 때까지만

문학의 향기: 대문호 괴테2

  • 김형진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6.07.04 10:20
  • 수정 2016.07.04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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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 편집국장

괴테에게는 너무나 사랑하는 한 여인이 있었다. 하지만 그 여인과 괴테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그 여인의 부모님이 괴테와의 만남을 반대하는 것.

이유인즉, 그 여인과 괴테와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날 뿐만 아니라 괴테가 부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어느 날 괴테는 그 여인이 너무나도 보고 싶은 나머지 다짜고짜 그 여인의 집으로 찾아 갔다.
하지만 역시나 그녀의 부모는 괴테를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때 괴테. 아무 말없이 주머니에서 성냥갑을 꺼내 불을 붙였다.

그리고 이를 의아하게 바라보던 그 여인의 부모에게 말하길. “제발, 제발! 이 성냥이 탈 때까지만이라도 그녀를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정말이지, 사랑은 이래야 하지 않을까? 저 말을 들은 부모는 어찌했을지? 또 이 말을 들은 그녀의 마음은 또 어떠했을지? 대문호의 말의 씨앗이란게 피어나지도 않았는데 향기롭다.

한 번은 어떤 여인을 너무나 사모하는 남자가 괴테에게 찾아왔단다. "선생님 지금 내가 누군가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그녀의 마음을 움직일만한 편지를 대필해 주시면 안될까요."
그렇게 괴테에게 부탁을 했단다.
이 남자의 진지하고 절실한 눈빛에 거절할 수 없었던 괴테. 잠시 골몰하다가 펜을 들어 의외로 짧은 한 문장으로 편지를 마무리했다.

"보고 싶습니다."
그 편지가 너무 짧다고 느낀 남자는 좀 더 늘여서 써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자, 괴테는 다음과 같이 편지지에 적었다고.
"보고 싶습니다. 지금 이곳은 상사병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저는 그 병에 걸렸나 봅니다."

그의 사랑이 이뤄졌는지 그것은 둘째손치더라도 정말로 무릎을 칠만한 명문장이 아니던가! 시를 떠나 말이라 함은 글이라 함은 저래야한다. 말의 씨와 글의 씨는 저렇게 뿌려져야한다.

괴테를 보면 “나는 겪지 않은 것, 나를 애타게 하거나 마음 쓰게 하지 않은 것들은 작품으로 쓰지도 않고, 표현하지도 않았다. 사랑할 때는 온통 그 사람을 위한 사랑의 시를 썼다”라고 말했다. 아, 그래서 어떤 위대한 작품치고, 자기고백이 아닌 것이 없다고 했던가! 그리해 무체험은 곧 무문학이며 무철학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괴테의 사랑시를 보면 정말 인류공영적인 아가페나 정신적인 교감의 필리오적인 사랑보다는 철저하게 에로스적이다. 그 에로스 또한 사회의 지탄을 받을 사랑해선 안될 대상과의 사랑이었다. 이는 오로지 애가 타는 마음씀이 아니었을까?

그 마음씀이라는 것엔 깊은 고뇌와 절망을 비롯해 인생의 깊이, 느낌의 오묘함과 이상야릇함, 신비로움과 먹먹함, 슬픔과 환희 등 다채로운 감정을 맛볼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70의 괴테가 사랑했던 그 여인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