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소풍'하면 생각나는 '정도리 구계등'

배민서(호스피스 간호사)

  • 배민서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6.07.04 10:15
  • 수정 2016.07.04 10:20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민서(미국거주, 호스피스 간호사)

완도읍 1구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완도 초등학교 때에도, 여중 때에도, 완도 여고를 다닐 때에도 우리들의 봄 소풍과 가을 소풍은 늘상 정도리 구계등으로 정해져 있었다. 작년에 가 보았던 내 고향 완도는 그 동안 얼마나 많이 발전했던지 완도 출신인 내가 길을 잃어버릴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요즘 아이들도 정도리 구계등으로 예전에 나처럼 소풍을 가는 걸까?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사업을 하시다 파산하신 아버지는 식음을 전폐하시고 술로 하루 하루를 연명하시다 폐인처럼 자리에 눕게 되셨다. 한의원 집 막내 딸로 태어나 오십이 될 때 까지 바깥 일은 해 본 적도 없으셨던 엄마가 용기를 내서 어판장으로 가셨다. 그 당시 완도에는 미역공장이 없었던 시절인지라 곡식 한 톨도 없는 쌀통을 들여다 보며 어렵사리 내리신 결정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어판장에서 갈치 두 박스를 사서 다라이에 얼음과 함께 담더니 비닐과 천으로 다독이며 덮어 또아리를 받쳐 머리에 이셨다. 산골 마을들을 다니며 곡식으로 바꾸는 물물교환 같은 그런 장사를 시작 하신 것이다. 부끄러움도 많으셨던 엄마는 아마도 아는 사람들을 보기가 민망해 깊은 산 골짜기로 발이 부르트도록 걷고 또 걸으며 모기만한 목소리로 겨우 말을 건네며 장사를 시작 하셨을 것이다.

그 날 밤, 나는 날이 저물때 부터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내 어린 마음에는 걱정과 불안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캄캄한데 어디서 헤매시다가 혹시 길을 잃으신 것은 아닐까? 아니면 호랑이가 물어간 것은 아니겠지! 이런저런 걱정들은 나를 일으켜 집 문을 나서게 했고 골목길 어귀를 서성이며 엄마를 기다리게 만들었다. 골목길에 누군가가 나타나면 행여 우리 엄마일까? 눈이 빠져라 쳐다 보았다.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며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고 빠르게 질주하듯 스쳐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봄 밤의 찬 기운은 시리도록 푸르게 내 살갗을 문지르고 있었다. 나는 부들 부들 떨면서도 엄마의 따사로운 품을 고대하며 기다렸다.  "아... 그렇게 기다려도 오지 않는 엄마!"

밤 하늘을 바라 보았다. 수 없이 많은 별들은 제각기 빛을 발하며 마치 검푸른 융단에 보석을 박아 놓은 듯 화려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개울 가에는 개구리들이 개골개골 알아 듣지도 못한 수다를 떨고 있었고, 허기진 내 뱃 속에서도 개구리처럼 꼴 꼬르르 하며 같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우리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에 다 다르자 내 볼에는 주르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근데 참 이상도 하지? 내가 울면 하늘의 모든 별들도 덩달아 눈물을 흘린다. 반짝이는 그 빛을 길게 길게 펼치며 마치 나에게 다가 오는 것만 같았다."
그 때에 "민서야! 민서야!" 언니가 나를 불렀다.
"빨리 들어와서 자야지 낼 학교에 가지!" 다그치듯이 부르는 언니 목소리에 얼른 옷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집에 들어와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은 정도리 구계짝지로 봄 소풍을 가는 날 이었다. "그 전에 엄마가 오셔야 할텐데...... " 걱정하며 나는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나는 두리번거리며 엄마를 찾아 보았다. 이불 속에도, 부엌에도, 헛간에도 엄마는 보이질 않았다. 나는 정도리 깻돌 밭으로 가는 재미난 소풍을 포기해야 만 했다. 소심했던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맛있는 김밥을 싸지 못해서, 삶은 달걀과 과자가 없어서 소풍을 포기해야 만 했다. 그 때까지도 오시지 않은 엄마가 한 없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11시가 지나서야 사립문 소리가 "삐그득" 하며 엄마가 들어 오셨다. 나는 "엄마!" 하며 달려가 엄마 품에 얼굴을 파 묻고 엄마의 허리를 두 팔로 꼬옥 안았다. "소풍을 안 가 부렀냐~ 우짜끄나~ 나는 시상에 그란줄도 모르고 널 눈이 빠지라 찾고 있었당께잉~ 우째야 쓰까잉~"

먹을 것을 건네 주시려고 아이들의 소풍 행렬에서 나를 무단히도 찾으시다가 그 긴 소풍 행렬을 다 보내고 집에 돌아와 안쓰러운 마음으로 나를 쳐다 보시던 엄마... 따스한 엄마품에서 참고 참았던 나의 울음보는 마침내 "으 앙~" 하고 터져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