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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의 바다, 희뿌연 하늘을 안고

배민서(미국거주 호스피스 간호사)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6.06.20 13:55
  • 수정 2016.06.22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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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서(미국거주 호스피스 간호사)

"암만 생각해도 난 못 가것는디 어짜끄냐!"
그렇게 다짜고짜 말하는 둘째언니는 안 가려고 작정을 한 듯 보였다. 함께 가족여행을 계획한 나는 언니를 설득하기 위해 지혜를 짜내기 시작했다. 일흔이 가까워진 나이임에도 언니는 현재 다니시는 일터를 놓칠까 봐 여행가기를 꺼려하셨다. 우리 집 식구들의 타고난 일중독 때문일까? "언니! 거제도에는 굴이 바위에 따닥따닥 붙어 있다든디……. 정숙언니는 조세도 챙겨 온데요! 굴 깔라고... "우리 영자언니가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어갔다. "워메! 굴이 그렇게 많다냐~?" "그랑갑든디……. 굴 까서 굴젓 담은다고 소금도 가져온다 든디 라아~"
"굴까는 재미가 젤로 좋다든디……. "
"그라믄 가야겄네잉~ 물때가 맞아야 쓰건디..." 그러면서 굴 까는 조세를 챙기시는 우리언니. 
 

이렇게 우리자매들은 함께 거제도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서울과 인천에서 두언니들이 형부들과 함께 출발하고 나는 광주에서 친구아들 결혼식을 마친 후에 부산 큰언니 집에 미리 가서 언니들을 기다렸다. 특별히 이번에는 완도에 사시는 둘째언니가 함께 여행에 동참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나에게는 다섯 명의 언니들이 있다. 모두들 인간승리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자랑스러운 분들. 평범하지못한 가정,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치 아프고 쓰라리게 살아 온 날들이 있었지만 한 결같이 철없는 소녀들처럼 속알머리가 없다고 말하며 함께 낄낄거리며 웃는다. 때로는 서로에게 서운하게 느낄 때도 있었다. 타고 난 고집스러운 성격때문에 서로를 아프게 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돌아서면 먼저 가슴이 저리고 눈물이 나오는 것은 언니들에게는 엄마 같은 따사로움이 담겨있기 때문이었다.

언니들, 형부들과 함께 찾아간 거제도 조용한 해변 아담한 팬션에 우리는 여정을 풀었다. 빨간 칸나 꽃들이 아름드리 피어있었고 푸르게 넘실대는 바다가 펼쳐져 있는 한적한 갯가에서 밤이 깊어가는 것도 잊으며 우리들은 옛 추억들을 더듬어 가기 시작했다. 언니들이 살아오신 인생의 여정들을 함께 훑어 내려가면서, 아프고 외로웠던 시간들을 되새길 때면 우리는 함께 눈시울이 붉어져 가슴으로 울었다.

그 밤에 문득 거제도의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린 시절에 바라보았던 그 별들이 거기에 있었다. 검푸르게 펼쳐진 아늑함 속에 영롱한 별빛들이 맑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 별들 중에 아주 희미하게 빛나는 작은 별, 바로 그 별 나라에서 온 어린왕자 같은 사람, 나의 언니들…….
다음 날 아침에 서둘러 해금강을 관광하는 배를 타기위해 찾아 간 바닷가에서 우리는 푸르름속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해안선을 타고 알몸을 드러낸 촉촉하게 젖어있는 개펄과 살아 꿈틀대는 갯바위들을 우리 자매들은 사랑했다. 물살이 하얀 포말을 남기며 부서지는 순간마다 신비롭게 반짝이는 해안가에서 자매들은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치 유혹하고 있었던 잠겨있던 바다 속 보물창고들… 너와 내가 하나인 거처럼, 나와 언니들이 오랜 세월 다른 삶속에서 버둥거렸어도, 함께 눈시울이 붉어지며 하나가 되어간 거처럼, 나와 자연도 하나인 게야.
이렇게 우주만물을 하나로 느껴갈 때에 생명력이 꿈틀거리겠지. 너의 아픔은 너 혼자만의 아픔이 아니야!

내 고향 완도의 바다는 늘 상 희뿌연 하늘을 끌어안고 울고 있었지.
그것은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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