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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8 민주화운동을 돌아보며

  • 김영신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6.05.12 12:39
  • 수정 2016.05.19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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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신(민주민생 완도행동 대표)

한때 광주사태라 불리던 1980년 5. 18 민주화운동은 1995년 ‘5. 18 민주화운동 특별법’ 제정으로 희생자에 대한 보상 및 희생자 묘역 성역화가 이뤄졌고 1997년 국가기념일로 제정해 정부 주관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완도에서도 2012년부터 매년 광주 5. 18 민주항쟁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행사가 시민단체에 의해 열린다.

광주 시민과 시민군이 민주화를 위해 하나가 되었던 그날을 되새기며 완도 오일장 입구에서 5. 18 민주화운동 당시의 사진을 전시하고 한쪽에서 주먹밥을 무료로 나누며 민주항쟁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첫 행사를 시작한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대부분의 5. 18 민주화운동 관련 사진이나 영상은 외국 언론에서 촬영하여 보관하고 있는 것들이다. 당시 신군부는 언론을 장악하고 주요 언론의 보도 내용을 차단하고 통제했다. 이에 반발한 전남매일 기자들은 시민들이 개처럼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신문에 단 한 줄도 싣지 못함이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는 반성문을 발표했다.

광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제대로 방송하지 않고 북한 특수군의 선동과 불순분자들이 체제 전복을 기도한 사태라고 왜곡된 방송을 내보내자 이에 격분한 광주 시민들이 공정방송을 요구하며 광주 KBS와 MBC 사옥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언론이 아닌 입소문을 통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신군부는 이와 관련된 모든 소문은 유언비어라며 국민들을 단속했고 보도지침으로 국내 언론을 통제해 광주시민들과 전라도사람을 북한에 동조한 빨갱이로 만들었다. 전국에 흩어져 살던 전라도 출신들도 빨갱이라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전라도사람은 빨갱이와 동일한 비하의 대상이 되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일까? 언론통제로 전 국민을 속이고 국민을 지켜야할 군인이 국민을 향해 발포했던 행위만큼이나 비상식적인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아직도 일부 극우 단체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을 광주폭동으로 부르며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고, 5. 18 민주화운동을 비방하고 의미와 가치를 훼손하는 글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무수하게 돌아다닌다. 너무 오랫동안 언론이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36년이 지난 오늘에까지 여전히 민주화운동이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이 아픈 진실을 외면하고 본질보다 외면에, 통찰보다 촌평에 붓끝을 가까이 한다면 언론이 통제되던 36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실 확인 없이 보도 자료를 그대로 기사로 쓰고, 잘못된 기사를 유포하고, 불편하지만 꼭 전달해야 할 기사를 외압에 의해 전달하지 못한 적은 없는지 성찰의 계기로 삼아보길 희망한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언론이며, 언론은 스스로와 권력에 대한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