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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해조류박람회를 개최하는 이유?

정영래(장보고연구회 이사장)

  • 정영래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6.04.27 22:54
  • 수정 2016.05.02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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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래(장보고연구회 이사장)

완도군은 2017년 4월 14일부터 5월 7일까지 24일 동안 '인류의 미래 해조류, 그 가치를 발견하다'라는 주제로 국제해조류 박람회를 개최한다. 그런데 왜 국제해조류 박람회를 개최할까?

해조류를 식량으로 하는 역사는 그리 멀지 않다. 기껏해야 미역을 산후조리용으로 썼을 뿐이다. 그러다 일본과 본격적으로 교류하면서 완도해조류는 공업용으로 수출이 시작되었으며, 해조류를 식용으로 수출하게 된 것은 완도에서 생산되는 해태(김)였다.

1930년대 큰 돈을 번 대표적 인물은 완도읍에 고 김상석씨로 알려지고 있다. 완도읍에 거주하면서 보통학교를 마치고 18세에 소액의 자본으로 해태무역을 시작하여 20세에 큰 돈을 벌었다. 1930년대에 거래고가 수십만 원을 상회하는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무역상이었다. 당시 삼성물산보다 앞서 무역을 했던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삼성물산 고 이병철 회장이 김상석씨를  자문으로 추대해 일본교역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한국 해조류 역사는 완도가 주도하여 왔다. 현재 전국해조류 생산량의 60%를 점유하고 있으며, 해조류를 식량으로 대체할 수 있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완도가 해조류박람회를 개최할 수 있는 자격과 의무가 부여되어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완도는 한국 해조류 역사의 근원지이다. 해조류 생산조건은 완도만 한 곳이 없다. 해태생산으로 대한민국 초기 정부의 경제기틀을 마련하였으며, 미역은 한국인 일상생활에 극히 필요로 하는 식품이다. 산모가 출산을 하면 누구나 미역국으로 산후조리를 하였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갯바위에서 생산되는 미역으로는 수요를 충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조선시대부터 미역은 금값이었다. 따라서 완도사람들은 대량생산에 착안하였다. 6-7년의 연구결과 미역포자배양에 성공하고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었다. 완도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톳은 종균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톳 뿌리 이식 양식이다. 당시 해양수산사무소 신우철연구원(현, 완도군수)은 톳 뿌리를 종사에 이식하여 중도리 어장에서 양식하였던 결과 대량 생산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종균(種菌)이 없으면 종근(種根)으로 대체할 수 있었던 발상의 전환이 완도사람들의 지혜이다. 다시마 역시 이와 같다. 다시마는 완도에서 생산할 수 없었다. 그러나 완도사람들의 노력으로 북방계 다시마를 남방에서 대량 생산 할 수 있었다. 이것을 먹이로 전복을 생산하는 창조적 발상의 전환이 완도를 해조류 천국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완도 사람들의 지혜이다.

완도는 자연적으로 지구상에 몇 안 되는 리아스식 해안의 중심지이다. 완도에서는 어느 해조류라도 양식이 가능한 환경조건이다. 완도는 지리적으로 남해의 자연환경과 서해의 환경을 두루 갖추고 있어 천혜의 해조류 양식지형이다. 여기에 장보고의 이상을 이어받은 창조적 모험을 할 수 있는 정신력이 완도 해조류를 발전시키는 근본이 되었다. 장보고가 해양물류에서 부를 축적하였다면, 완도는 해조류로 인하여 부자가 될 수 있다.

해조류는 부의 상징이다. 해조류 생산에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이 “부의 고장 완도”라는 명성이다. “완도는 개도 5백 환짜리를 물고 다닌다.” 5-60년대 대일수출 해태는 우리 국가 재정의 바탕이 되었다. 일본은 해태로 유출되는 외화를 방지하기 위해 자체생산 개발을 하였다. 1970년 해태수출이 막히면서 74년부터 미역양식이 주산업으로 떠오른다. 80년대에 대일 수출용 간미역이 완도를 풍요롭게 하였다. 이어서 이루어진 것이 톳 수출이다. 톳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양식기술은 완도사람들의 창조적 발상의 전환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일본 상인들의 농간으로 김과 미역, 다시마의 소비시장을 걱정할 단계에 접어들면서 또 하나의 발상이 있었다. 전복양식이 시도되면서 치폐가 생산되고 미역 다시마를 먹이로 한 해조류 2차 산업이 완도사람들의 손에서 만들어진 결과이다.

완도해조류는 앞으로 중국시장을 겨냥한 미래의 부를 창출하는 우리의 산업이 될 것이다. 이것이 국제해조류박람회를 완도에서 개최하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