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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를 녹여 평화를 벼리는 사람

완도를 희망하는 사람들: 마지막 대장장이 망석리 임채온 씨

  • 박남수 기자 wandopia@daum.net
  • 입력 2016.03.17 03:27
  • 수정 2016.03.21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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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읍 5일장 한가운데 식당 앞 평상에 호미, 낫, 조새, 도끼 등 20여 종의 농사와 바다 일에 필요한 연장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다. 그 옆 연탄 화덕에서 맛있게 양념된 닭발이 연기를 풍기며 맛있게 구워지고 있다.

장 보러 나온 중년의 여성 손님이 갈고리 하나를 들고 값을 묻는다. 초로의 아저씨가 그것을 5,000원에 건네고는 손님에게 용도를 묻는다. ‘물질’ 하느냐고. 연장의 주인은 갈고리를 찾는 이들의 면면을 다 아는 듯하다. 연장을 파는 이는 완도읍 망석리 임채온(64) 씨로 한 평생을 농부와 어부들의 생산을 위한 연장만을 만들어 왔다. 그의 연장을 찾는 이를 임 씨는 안다.

망석리 골목 끝 맨 윗집의 대문 칸에 붙은 넓지 않은 공간이 그의 대장간이다. 거기서 만든 연장들을 장날마다 그의 부인 박순덕(59) 씨가 운영하는 장옥식당 앞에서 내다 판다. 부인 박 씨가 장꾼들과 손님들에게 밥과 술을 내면 임 씨는 연탄 화덕에 닭발과 곱창, 생선 등을 반찬과 안주로 낸다. 가을엔 전어 굽는 냄새가 장터 전체로 퍼져 나간다.

임 씨 부부의 영업장 맞은편 멋지고 넓은 대장간은 해남 사는 이가 연장들을 벼릴 뿐 거시서 메질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어느새 임 씨는 완도의 마지막 대장장이가 되었다.

임 씨가 대장장이 일을 시작한 것은 70년대였다. 그때는 섬마다 대장간이 있었으니 완도 전체에 대장장이는 꽤 많았다. 서로 경쟁도 하고 서로에게 배우기도 했다. 80년대에 그가 만든 농어구들은 인기가 많아 철물점의 귀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싼 중국산 연장들이 수입되면서 대장장이들이 설 자리가 사라졌다. 이제 임 씨만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연장들의 재료로 임 씨는 철근이나 자동차의 겹판 스프링을 사용한다. 먼저 적당한 크기로 철근을 자르고 불을 붙인 갈탄에 철근 조각을 올려 달군다. 벌겋게 달아오르면 꺼내 망치로 때려 원하는 모양으로 펴거나 휘거나 꼬기도 한다. 찬물에 담갔다가 다시 달구어 때리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10여분 작업하면 조새나 호미 등의 모양이 만들어진다. 거기에 준비해 둔 나무 손잡이를 끼우면 완성된다. 괭이나 쇠스랑 등은 좀 더 어려운 과정을 거친다. 그는 단단한 쇠를 엿가락처럼 자유자재로 다룬다.

오년 전쯤 어느 겨울날, 고금도 항동 청년회가 주관한 굴축제 프로그램 중 굴까기 경연대회를 위해 준비했던 미니 조새를 만든 이도 바로 임 씨다. 조새의 미니어처에 금은동 도금을 입혀 표구를 하니 훌륭한 상품이 되었다. 그가 만든 금조새, 은조새, 동조새는 평생 조새로 굴을 까온 어머니들에게 세상에서 유일한 선물이 되었다.

약관의 나이에 시작해 40년 넘는 세월 동안 대장간 일을 해 온 임 씨는 이제 완도에서 유일한 대장장이다. 단지 유일한 것과 마지막 남은 것의 차이는 크다. 지금 지키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지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보존하라는 일종의 ‘시그널’이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들은 호미와 조새가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지 잘 모른다. 시간이 더 흘러 임 씨가 만든 연장들이 농업박물관이나 어촌민속박물관에서나 전시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만든 도구의 의미마저 퇴색되고 잊혀진다면 그거야말로 슬픈 일이다. 생명과 평화의 의미를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대세인 요즘에도 여전히 쇠를 녹여 총과 대포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고 전쟁과 싸움은 끊이지 않는다.

쇠를 녹여 호미와 조새를 만드는 망석리 마지막 대장장이 임채온 씨의 일이 소중한 이유다. 우리 곁에 하나 남은 유산을 더 늦기 전에 보존하기 위해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 장날이건 아니건 장터 대장간에서 매일매일 메질소리 들리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무장무장 잊혀 가는 생명의 소리, 평화의 소리 울려 퍼지면 참 좋겠다. /박남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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