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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동엔 산다화가 피었다오”

  • 김원자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5.12.10 11:24
  • 수정 2015.12.1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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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자 보길도비파원 원장

12월 들어 보길도비파원에 손님이 뚝 끊겼다. 겨울관광요소가 없는 보길도의 맹점이다. 이게 어디 보길도뿐이겠는가.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내 오랫동안 벼르던 완도비파영농단지를 보러 신지도에 들렀더니 그곳도 마찬가지다. 점심시간이어서인지 비파농장이며 매장이 관리인도 없이 텅 비어있어 방명록에 사인만 남겨놓고 명사십리해변으로 갔다.

“아, 이처럼 아름다운 해변이 전국 어느 곳에 또 있을 것인가” 그런데 또 실망이다.

2차선으로 넓게 난 길이 보길도와도 다르고, 육지에서의 접근성 또한 그리 어렵지 않을 터인데 겨울관광콘텐츠가 없는 남도관광의 맹점이 여기서도 보인다.

하릴없이 돌아와 아랫목에 누워 책이나 읽기로 한다. 지난 가을 대학원생들과 함께 비파원을 찾은 전남대학교 김대현교수님께서 선물로 주신 '고산유고(孤山遺稿)’는 무려 1,036페이지에 달하는 제대로 된 책이다. 그동안 여러 국역본이 나왔지만 널리 읽혀지지 못했었는데 올해까지 4년에 걸쳐 김 교수님에 의해 ‘고산유고’ 전 6권이 완역되어 내 손에까지 들어온 것이다.

12월엔 책을 읽어야 한다. 아니 보길도 섬에서의 겨울은 참으로 책읽기 좋은 달이다. 뒷숲에 빽빽이 서있는 동백꽃 꿀을 찾아 재재거리는 새소리만 들려오는 이곳에서 고산의 옛시를 읽는 호사를 어디서 누려볼 것인가. 고산은 우리나라 국문학사에 아름다운 우리말을 살려 섬세하고 미려한 시조를 지어낸 시조문학의 대가로 알려졌거니와 그의 한시 또한 고아하기 그지없다. 펼치는 장장마다 그냥 넘기기 어려운 격조 높은 시구들로 가슴이 풍족해진다.

그가 65세 때 서울 사는 송파거사(松坡居士) 이해창과 주고받은 한시의 일절이다.

차운기정송파거사(次韻寄呈松坡居士)

남쪽 바닷가 어부와 서울사람
누가 알리오. 교분의 정 일찍부터 두터웠음을.
가련한 나 애오라지 어리석기에 세상과 어긋났지만
그대의 높은 인격 풍진에서 빼어남을 사랑했네
낙서재 밖에는 꽃이 피어 비단 같고
휘수정 가에는 물이 큰 띠를 끄는 것 같네...(중략)

고산은 시의 끝에 또 편지 글을 덧붙였는데 이렇게 적었다.

‘신음(呻吟)기가 좀 나아서 겨우 병든 몸을 좀 움직일 수 있었다오. 바다위의 고향을 이름하여 부용동이라 하고, 고향의 은거지를 금쇄동이라 하였다오. 낙서재는 부용동 작은 집이요, 휘수정은 금쇄동의 조그마한 정자라오. 어느 때나 서로 만나서 웃으며 달빛 아래서 한잔 술의 즐거움을 나눌 것인가. 부용동 안에는 산다화(山茶花)가 피었다오’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말년에 세속을 떠나 자연 속에서 안식을 찾은 고산의 일상과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절절히 느껴지는 글이다. 특히 ‘부용동 안에는 산다화가 피었다오’하는

말미의 부연은 ‘한번 만나자’라든가 ‘놀러 오시게’하는 직설적 어법보다 시적으로 아름다운 표현이다. 큰 시인으로서의 고산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말일 것이다.

산다화는 종이 좀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애기동백, 흰 동백을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는데 고산은 동백을 부러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산다화...얼마나 그가 언어를 조탁하고 골라 썼는지 알 것 같다. 우연히 보길도 고산유적지 세연정 옆에 살게 되면서 고산의 다방면에 걸친 천재적 면모를 수시로 감상하고 있지만, 정작 시를 많이 읽지 못했는데, 이제 ‘고산유고’ 완역본이 내 손에 있으니 이 겨울이 전혀 춥거나 지루할 것 같지가 않다.

김원자 <여행칼럼니스트·보길도비파원 원장>